창덕궁 후원 군자의 성품을 닮은 경치의 애련지와 애련정 (昌德宮 愛蓮池,愛蓮亭)은 조선시대 1692년(숙종 18)에 불로문(不老門)을 지나서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세웠다고 하는데, 지금 그 섬은 없고 정자는 연못 북쪽 끝에 붙여 있다.
애련지(愛蓮池)는 연꽃을 좋아 했던 숙종이 이 정자에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붙여, 애련지가 되었고, 숙종은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은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 라고 새 정자의 이름을 지은 까닭을 밝혀 놓았다, 애련지 서쪽 연경당 사이에 또 하나의 연못이 있는데, 이곳에 어수당(魚水堂)이라는 건물이 이었다 하나 지금은 없어졌다. 자리한 간결한 정자가 애련정(愛蓮亭)이다. 애련지는 부용지와 달리 가운데 섬이 없는 방지(方池)로, 사방을 장대석으로 쌓아올렸다. 입수구가 독특한데, 흘러내리는 도랑물을 물길을 따라 폭포수처럼 떨어지게 만들었다.
애련정(愛蓮亭)은 애련지의 물가에 지은 것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이익공의 사모지붕 양식을 띠고 있다. 일반 건물에 비해 추녀가 길며 추녀 끝에는 잉어 모양의 토수가 있다. 물 기운으로 불기운을 막는다는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것이다, 건물을 받치는 네 기둥 가운데 두 기둥은 연못 속에 잠겨 있는 초석 위에 세워져 있다. 정자 사방으로 평난간을 둘렀는데, 낙양창 사이로 사계절이 변하는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애련’이라는 이름은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가 쓴 ‘애련설(愛蓮設)’이라는 시에서 유래했다. 숙종이 지은 ‘애련정기(愛蓮亭記)’가 ‘궁궐지(宮闕志)’에 전한다.
의두합(倚斗閤)은 1827년(순조 27) 효명세자는 애련지 남쪽에 의두합을 비롯한 몇 개의 건물을 짓고 담장을 쌓았다. 현재 ‘기오헌(奇傲軒)’ 이라는 현판이 붙은 건축물로 8칸의 단출한 서재로, 단청도 없는 매우 소박한 건물이다. 바로 옆의 운경거(韻磬居)로 추정되는 건물은 궐 안에서 가장 작은 한 칸 반짜리 건물이다.
연경당 (昌德宮 演慶堂. 보물 제1770호)은 주합루와 영화당 구역을 감싸고 있는 작은 능선을 지나면 골짜기에 연경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 환경은 아름다운 숲과 연못 및 정자 등이 어우러져 이상적인 경관을 이루고 있다. 우측의 솟을 대문인 장양문은 사랑채로 통하고, 이 문을 지나 사랑마당에 들어서면 좌측에는 안마당과 사랑마당을 경계 짓는 담장이 꺾여 있으며 담장 가운데에 문인 정추문이 있다. 그리고 좌측의 평대문은 안채로 통하는 수인문이다. 사랑채와 안채가 담으로 구분되어 있기는 하나 한번 꺾여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전체 공간구성은 서로 연결된 만(卍)자 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경당이란 이름은 원래 사랑채를 가리킨 것이었으나 지금은 이 건물들을 통틀어 연경당이라 부르고 있다. 사랑채의 오른편으로는 서재 구실을 하는 선향재(善香齋)가 위치해 있으며, 선향재 뒤편의 경사진 언덕에는 화계를 설치하고 제일 높은 곳에 농수정(濃繡亭)을 배치하였다. ‘연경(演慶)’은 경사가 널리 퍼진다는 뜻이다. 사랑채 건물은 장대석기단 위로 사다리꼴의 초석에 네모기둥을 세우고 평주 위에는 장여가 도리를 받고 있는 굴도리집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안채는 납도리로 되어 있으나 사랑채는 굴도리로 되어있다는 점과 안채, 사랑채 모두 각기둥을 사용했다는 점으로 조선시대의 남녀유별과 가옥규제에 대한 법령을 충실히 따랐음을 볼 수 있다. 건물배치와 공간구성 등에서 당시의 유교적 철학이 적용된 궁궐 내 사대부 집으로 당시의 주택과 비교해 볼 수 있는 한국주택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궁전의 조영법식과 기술력으로 건축되어 세련되면서 단아한 세부양식이 궁궐건축 고유의 품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연경당은 조선시대 궁궐 내 사대부 건축으로서 그 가치가 뛰어나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보물 소재지: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창덕궁(와룡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