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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의 존덕정과 옥류천 일원

들풀/이영일 2013. 2. 11. 10:59

존덕정(尊德亭) 일원은 이 일대는 후원 가운데 가장 늦게 갖춰진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로 보인다. 원래 모습은 네모나거나 둥근 3개의 연못들이 있었는데, 1900년대 이후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관란지라고 부른다. 연못을 중심으로 겹지붕의 육각형 정자인 존덕정, 부채꼴 형태의 관람정(觀覽亭), 서쪽 언덕 위에 위치한 길쭉한 맞배지붕의 폄우사(砭愚榭),관람정 맞은편의 승재정(勝在亭) 등 다양한 형태의 정자를 세웠다. 폄우사는 원래 부속채가 딸린 ‘r"자 모양이었으나 지금은 부속채가 없어져 단출한 모습이고, 숲 속에 자리 잡은 승재정은 사모지붕의 날렵한 모습이다. 1644년(인조 22)에 세워진 존덕정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관람정과 승재정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존덕정(尊德亭)은 1644년(인조 22)에 지어진 건물로 처음에는 육면정이라고 부르다가 존덕정으로 바뀌었다. 이 건물과 이어진 다리 남쪽에 시간을 재는 일영대(日影臺) 가 있었다고 한다. 존덕정은 본 건물을 짓고 그 처마에 잇대어 지붕을 따로 만들어 지붕이 두 개다. 바깥 지붕을 받치는 기둥은 하나를 세울 자리에 가는 기둥 세 개를 세워 이채롭다. 존덕정 천장 중앙에 그려진 쌍룡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그림은 왕권의 지엄함을 상징한다.

존덕정 안 지붕 아래는 ‘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 쓰인 나무판이 걸려 있다. 정조가 재위 22년(1798)에 萬川明月主人翁 -세상의 모든 시냇물이 품고 있는 밝은 달의 주인공- 이라는 號를 스스로 지어 부르고, 그 서문을 새겨 존덕정에 걸어 놓은 것이다. 그 요지는 ‘ant 개울들이 달을 받아 빛나지만 달은 오직 하나이다. 내가 바로 그 달이요. 너희들은 개울이니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에 합당하다’라는 것으로 신하들에게 강력하게 충성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평생 왕권강화와 개혁정치를 위해 노력했던 정조의 준엄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옥류천(玉流川) 일원은 다양한 각도에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후원 북쪽 가장 깊은 골짜기에 흐른다. 1636년(인조 14)에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깍아 내고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여 작은 폭포를 만들었으며, 곡수형의 수로를 따라서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벌이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 세 글자는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 시는 이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작품이다.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농산정(籠山亭), 취한정(翠寒亭), 청의정(請漪亭) 등 작은 규모의 정자를 곳곳에 세워, 어느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는 정원을 이루었다. 작은 논을 끼고 있는 청의정은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초가이다.〈동궐도〉에는 16채의 초가가 보이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청의정만 궁궐 안의 유일한 초가로 남아 있다.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353년 중국 동진 소흥(紹興, 현 샤오싱)지방의 난정(蘭亭)에 당대 명필 왕희지(王羲之 307-395)를 비롯한 명사 41명이 모였다. 난정 밑에 굽이치는 물길을 만들어 술잔을 띄어 보내면, 자기 앞에 온 술잔을 받아들고 시를 지어 발표했다. 다음 잔이 올 때까지 발표하지 못하면 벌주로 술 석잔을 마셔야 했다. 여기서 나온 시를 모은 것이 유명한 〈난정집서(蘭亭集序)〉이다. 이 놀이를 ‘유상곡수연’이라 하여 그때부터 상류층의 유희로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보물 소재지: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창덕궁(와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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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