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묘 및 성균관<대성전ㆍ동무ㆍ서무ㆍ삼문ㆍ명륜당>(서울 文廟 및 成均館<大成殿ㆍ東廡ㆍ西廡ㆍ三門ㆍ明倫堂>, 보물 제141호)은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세우고 정종 2년(1400)에 불에 탄 것을 태종 7년(1407)에 다시 지었으나, 이 역시 임진왜란으로 타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문묘(文廟)는 대성전(大成殿)을 비롯한 동·서무(東·西廡) 등 제향 공간구역과 명륜당을 비롯한 동·서재(東·西齋) 등 교육 공간구역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대성전과 명륜당의 관계를 바탕으로 지방 향교(鄕校)를 포함한 문묘에는 몇 가지 형식이 있는데, 서울 문묘는 대성전을 앞에 두고 명륜당을 뒤에 두는 이른바 전묘후학(前廟後學) 형식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성전(大成殿)은 선조 34∼35년(1601∼1602)에 지은 건물로,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 공자(孔子)를 주벽(主壁)으로 증자(曾子)·맹자(孟子)·안자(顔子)·자사자(子思子) 등 사성(四聖)을 좌우에 배향(配享)하고 공자의 뛰어난 제자들인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그리고 우리나라의 설총(薛聰), 최치원(崔致遠), 이황(李滉), 이이(李珥)를 비롯하여 18현(十八賢)을 종향(從享)한 전각(殿閣)이다. 규모는 앞면5칸·옆면4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두 옆면과 뒷면 벽 아랫부분에 돌아가며 낮게 벽담을 쌓았는데, 이는 중국 건축 기법을 느끼게 한다. 대성전 현판 글씨는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의 친필로 전해진다.
동무와 서무(東·西廡)는 대성전 앞에 마주해 있고 대성전과 동시에 창건하여 공문(孔門) 제자 69분의 위패를 포함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 112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가 해방 후 전국 유림대회의 결정으로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는 대성전에 모시고 그 밖의 94현의 위패는 매안(埋安: 위패를 땅에 묻음)하여 지금은 비어 있다.
삼문(三門)은 대성전의 남쪽에 위치한 제례 등의 행사에 사용되었던 정문인데, 오른쪽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나오도록 했으며, 가운데 문은 성현들의 넋이 드나드는 문이다. 동삼문(東三門)은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동쪽에 위치한 문으로 임금이 친히 석전(釋奠)에 참석할 때 출입하던 문이다. 평상시에는 닫아놓고 임금이 오실 때만 열기 때문에 어삼문(御三門)이라고도 한다. 전사청(典祀廳)은 성종 3년(1472) 대사성 李克基 요청으로 대성전 서쪽에 제사 음식을 차리는 동향6칸, 대학당(戴學堂)은 하급 관원들의 관청인 수복청(守僕廳)으로 남향4칸, 제기고(祭器庫)는 태조 7년(1398) 제사용 그릇을 보관하는 북향6칸 등 부속시설을 따로 설치하였다.
묘정비각(廟庭碑閣)은 문묘의 연혁을 기록한 비각으로 태종 10년(1410)에 변계량(卞季良)에게 작성하여 비를 세웠다. 비각은 중종 6년(1511) 서향1칸 규모로 건립되었다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인조 4년(1626)에 이정구(李廷龜)가 비음(碑陰)을 기록하게 명하고, 이를 이홍주(李弘冑)가 쓰고 김상용(金尙容)이 전서(篆書)하여 비각을 복원하였다.
탕평비각(蕩平碑閣)은 영조 18년(1742)에 당쟁의 폐단을 막기 위해 성균관 유생들에게 내린 글을 새긴 비(碑)로 성균관 입구 북향 1칸 규모로 지어졌다. 일명 어서비각(御書碑閣)이라고 한다. 비문에 “두루 화합하고 편당을 짓지 않은 것은 군자의 공평한 마음이고[周而弗比 乃君子之公心] 편당 짓고 두루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소인의 사사로운 마음이다.[比而弗周 寔小人之私意]”라고 적혀 있다.
하마비(下馬碑)는 삼문 밖의 탕평비각 오른쪽에 있으며 “높고 낮은 모든 사람은 이곳에서부터 말에서 내리라[大小人員皆下馬]”는 뜻이다.
성균관 대성전 은행나무(成均館 大成殿 銀杏-,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7호)는 수령 측정 결과, 두 그루 모두 450±50년의 노거수로 수형이 아름답고, 승정원일기,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역사적 기록에도 그 식재 시기와 보존상태 등과 관련된 내용이 확인되고 있으며 일부 외과수술은 이루어졌으나 원형이 크게 변형되지 않았으므로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다.
서울 문묘 및 성균관은 조선시대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제향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유생들의 유학교육을 담당하던 곳이며, 또한 건축사 연구의 자료로서 전통과 역사가 깊이 배어있는 곳이다. 서울 문묘 일원의 보물 및 현대건축물을 제외한 지상시설물 포함하여 2011년 7월 28일 사적으로 지정 하였다. (자료출처: 문화재청과 성균관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25-2 (명륜3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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