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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천탑의 화순 운주사지(和順 雲住寺址, 사적 제312호)

들풀/이영일 2015. 5. 16. 09:26

  화순 운주사지(和順 雲住寺址, 사적 제312호)는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세웠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운주사는 나지막한 야산 분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이다.

  절을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중기에서 말기까지 매우 번창했던 사찰로 보이며, 15세기 후반에 다시 크게 지어졌다가 정유재란으로 폐찰 되었다. 운주사(雲住寺)는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배를 움직인다’는 뜻의 운주사(運舟寺)로 불리기도 한다.

현  재 돌부처 70구와 석탑 18기만이 남아 있으나,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석불석탑이 각 1천구씩이 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초기까지는 천 여 구의 불상과 탑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산과 들에 흩어져 있는 70여 구의 돌부처들은, 수 십 ㎝에서 10m 이상의 거대한 돌부처까지 그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이들 불상은 대개 비슷한 양식을 보여 주고 있는데 평면적이면서 토속적인 얼굴모양, 돌기둥 모양의 신체,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팔과 손 등의 생김새에 어색하면서도 규칙적인 옷주름, 둔중한 기법 등은 운주사에 있는 불상만의 특징이다.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신체 구조는 고려시대 지방적인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아마도 석인상(石人像)을 제작하던 석공들이 대거 동원되어 만든 고려 석불상이라 하겠다.

석탑 21기도 산야 여기저기에 즐비하게 서 있는데 그 모양이나 무늬의 표현방식이 매우 독특하여, 둥근 공모양의 원형탑이나 호떡 모양의 돌을 올려놓은 듯 한 원판형탑 등 특이한 모양의 탑도 있다. 3층·5층·7층·9층 등 층수도 다양하다. 일반적인 사각형 탑들은 너비가 좁고 높이가 고준(高峻)하며 옥개석(屋蓋石)이 평면적이어서 고려석탑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이 석탑에서 눈에 띄는 것은 기단(基壇)이나 탑신석(塔身石)의 면석(面石)에 ‘X’, ‘◇’, ‘Ⅱ’과 같은 기하학(幾何學) 무늬들이 돋을새김과 선새김 등으로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 이런 기하학적 무늬의 애용은 불상의 기하학적 주름과 더불어 이 운주사가 유적의 가장 특징적인 양식으로 크게 주목된다.

  운주사에는 누운 부처(와불)가 있어 유명하다. 도선이 천불천탑(千佛千塔)을 하룻밤에 세울 때 맨 마지막으로 와불(臥佛)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는데, 공사에 싫증난 동자승이 닭이 울었다고 거짓말을 하여 불상을 세우지 못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운주사는 특이한 돌부처와 석탑이 모두 한 절 안에 있다(奉安)는 점에서 천불천탑에 대한 독특한 신앙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서 우리나라 미술사(美術史)와 불교사(佛敎史) 연구에 중요한 곳이다. 또한 운주사는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네 차례의 발굴조사(發掘調査)와 두 차례의 학술조사(學術調査)를 하였지만 운주사의 정확한 창건연대(創建年代)와 창건세력, 조성배경(造成背景)에 대한 구체적인 확증을 밝히지 못하여 여전히 신비로운 사찰로 남아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 산3번지 외 대초리 일원

* donga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227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