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이: 미륵사지탑등 18미터(좌대 2미터) 철골로 한지에 채색하여 제작
. 점등: 2015년 4월 29일 ∼ 5월 26일
. 탑등의 위치: 서울 광화문광장
미륵사지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웅장한 규모를 보여주는 국보 제11호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원형으로 하여 미륵사지 탑등(The pagoda lantern of Mireuksa temple site)을 한지등으로 재현하였다. 탑의 양식을 그대로 살려 단아한 기풍의 한지등으로 전통등의 기법을 살려 화려한 컬러보다는 석재가 가지고 있는 오래된 유물로서의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하였다. 좌대를 포함하여 높이가 20m에 이르며 미륵사지석탑의 70% 크기에 화학적인 면을 더하여 전통한지등이 갖는 화려하고 은은한 맛을 살렸으며 총 10부분 나뉘어진 탑과 좌대로 이루어져 40호크기의 한지 500여장이 사용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설치하였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益山 彌勒寺址 石塔, 국보 제11호)은 백제 최대의 절이었던 익산 미륵사터(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97번지)에 있는 탑으로, 무너진 뒤쪽을 시멘트로 보강하여 아쉽게도 반쪽탑의 형태만 남아 있다. 6층까지만 남아 있으며, 정확한 층수는 알 수 없다.
석탑의 기단(基壇)은 목탑과 같이 낮은 1단을 이루었다. 탑신(塔身)은 1층 몸돌에 각 면마다 3칸씩을 나누고 가운데칸에 문을 만들어서 사방으로 내부가 통하게 만들었으며, 내부 중앙에는 거대한 사각형 기둥을 세웠다. 1층 몸돌의 네 면에는 모서리기둥을 세웠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가 볼록한 목조건축의 배흘림기법을 따르고 있다. 기둥 위에도 목조건축에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재료인 평방(平枋)과 창방(昌枋)을 본떠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네 귀퉁이에 이르러서 살짝 치켜 올려져 있다. 2층부터는 탑신이 얕아지고 각 부분의 표현이 간략화되며, 지붕돌도 1층보다 너비가 줄어들 뿐 같은 수법을 보이고 있다.
탑이 세워진 시기는 백제 말 무왕(재위 600∼641, 639년 무왕의 왕후가 발원하여 건립)대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되고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는 탑으로, 양식상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익산 미륵사지(益山 彌勒寺址)에는 두 가지 볼거리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이다.
미륵사지 석탑(益山 彌勒寺址 石塔, 국보 제11호)은 1974~1975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조사에 의하여 동쪽탑은 목탑이 아니라 석탑임이 밝혀져 이른바 동.서 쌍탑의 배치였음을 알게 되었다. 동탑은 그 뒤 발굴조사에 의해서 9층으로 확인되어 1993년에 9층(높이 27.67m)으로 복원되었다. 서탑은 1915년 보수 때 바른 콘크리트를 해체, 발굴조사를 하던 중 2009년 사리장엄을 발견하였으며 2010년까지 해체 발굴조사를 완료하고 2013년 11월부터 복원공사 중이 있고 2016년 완료 예정이다.
미륵사지 당간지주(益山 彌勒寺址 幢竿支柱, 보물 제236호)는 높이 395cm이며 통일신라시대 중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 남쪽에 2개의 지주가 동서로 약 90m 간격을 두고 동서로 마주보고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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