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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景福宮, 사적 제117호) 소주방(燒廚房) 100년 만의 복원

들풀/이영일 2015. 5. 24. 07:38

경복궁(景福宮, 사적 제117호) 소주방(燒廚房)이 조선 시대 임금의 수라와 궁중의 잔치음식을 준비하던 궁중의 부엌으로 지난달 말 복원을 완료하고 5월 궁중문화축전 기간에 맞춰 일반에 개방되었다.

경복궁(景福宮, 사적 제117호)은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왕조 제일의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으로 태조 4년(1395)에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처음으로 세운 궁궐이다.

소주방(燒廚房)은 조선 태조 4년(1395) 경복궁 창건 때 건립되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4년(1867) 경복궁 중건 시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그러나 1915년 일제가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경복궁의 여러 전각들과 함께 헐려 없어졌다. 문화재청은 2004~2005년 실시된 건물터 발굴조사와 조선왕조실록,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궁궐지(宮闕志), 왕궁사(王宮史), 북궐도형(北闕圖形) 등 고문헌 고증을 거쳐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약 4년에 걸쳐 건물 17동을 복원했다.

소주방 권역은 경복궁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내소주방(內燒廚房)과 외소주방(外燒廚房, 일명 난지당 蘭芝堂), 생물방(生物房)등 3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내소주방(內燒廚房)은 안소주방이라고도 불리며 왕과 왕비 등 이른 아침에 드시는 아침 수라와 낮것상이라고 부르는 점심, 저녁 수라 등 궁궐의 일상식을 만드는 곳이다. 아침 일찍 먹는 초조반상은 자릿조반이라고 하며 초조반상은 죽이나 옹이, 미음 등이 올려지고 조석수라는 12첩 반상으로 수라와 탕을 두 가지씩과 기본 찬품(반찬)과 쟁첩에 담는 12가지 찬물들로 구성된다. 수라상의 찬은 서로 조리법이나 주재료가 겹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점심으로 낮것상을 올리는데 국수, 미음, 죽 등의 유동식이나 간단한 다과상을 준비한다. 식전 자리끼, 낮것, 외찬같은 간식은 생과방의 협조를 얻어 같이 올린다.

내소주방은 본채로서 정면 9칸, 측면 2칸의 총 18칸으로 된 ‘ㅡ’자형(일자형) 건물에 동, 서행각 각각 5칸, 남행각 9칸이 ‘ㄴ’자형으로 연결되고 그 동편에 ‘ㄱ'자형 동행각 6칸, 남회행각 15칸과 창고 2칸과 우물이 위치하고 있다.

외소주방(外燒廚房, 일명 난지당 蘭芝堂)은 연회음식 등 각종 잔칫상을 준비하던 곳이다. 정월, 단오, 추석, 동지 등의 명절음식과 왕과 왕비의 탄생일, 궁 밖 종친들의 생일과 왕족의 관례나 가례와 같은 잔치음식을 준비하던 곳으로 밖소주방이라고도 한다.

외소주방은 본채로서 정면 11칸, 측면 2칸 총 22칸으로 된 ‘ㅡ'자형(일자형) 건물에 동, 서행각 각각 5칸, 남행각 13칸이 ‘ㅡ’자형으로 연결, 그 동외행각 13.5칸, 남회행각 15칸으로 구성되어있다.

생물방(生物房)은 복회당, 생과방, 생것방이라고도 부르며 낮것상과 별식이나 외찬 때는 내소주방 내인과 함께 생과, 숙실과, 조과, 차, 화채, 죽 등 임금의 후식과 별식을 준비하는 곳이다. 잔치 때 각종 떡과 각색 다과류를 포함해 음식에 꽂는 꽃인 상화도 만들었다. 왕가의 친척이나 손님이 왔을 때에 다과상을 차려서 대접하는 곳이다.

생물방은 본채로서 정면 11칸, 측면 2칸의 총 22칸으로 된 ‘ㅡ’자형 건물에 동, 서행각 각각 5칸, 남행각 9칸이 ‘ㄷ'자형으로 연결되고 동외행각 23칸이 있다.

과 궁중의 잔치, 고사 음식을 차리던 외소주방(外燒廚房, 일명 난지당 蘭芝堂), 임금의 별식인 다식, 죽, 전, 과일, 떡 등을 준비하던 생물방(生物房)으로 이뤄져 있었다.

소주방지 우물은 북궐도에는 방형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원형의 우물로서 부채꼴 모양의 석재를 원형으로 엇갈리게 배치한 것이 확인되었다. 우물 내부를 4m 가량 조사했을 때부터 바닥에 물이 고이기 시작하여 조사를 더 진행할 수 없었으나 아직도 수원이 살아있음을 확인되었다. 조선의 우물은 2010년 서울의 4대궁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과 종묘 내 우물에 대한 현황조사와 수질분석을 실시한 결과, 총 32개의 우물이 현재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존하는 우물 깊이는 3.4m이고, 평균 수심은 2m 바닥은 마사토-암반-석재-자갈 순 이였으며, 암반을 둥글게 파거나 바닥에 숯을 넣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시대의 소주방은 나라의 안위라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임금의 건강과 직결된 중요한 곳으로, 수많은 궁녀들이 새벽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정성을 다해 부지런히 임금에게 올릴 음식을 장만하던 생동감 있고 활기 넘치는 공간이었다.

소주방 복원은 단순한 외형적 복원에 그치지 않고 궁중음식문화 프로그램 등과의 접목을 통해 관람객이 몸소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참여형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자료출처: 경복궁 소주방 안내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청와대로 1 (세종로)

* donga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23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