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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의 애환. 정업원터(淨業院遺址)

들풀/이영일 2015. 5. 28. 08:52

  정업원터(淨業院遺址, 淨業院跡,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호)는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송씨(定順王后 宋氏, 1440∼1521)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비(碑)는 조선 영조 47년(1771)에 세웠다. 비문은 음양 모두 영조의 친필로 앞면에는 ‘淨業院舊基(정업원구기)’, 뒷면에는 ‘皇朝正德十六年 辛巳六月初四日後二百五十一年 辛卯九月初六日立 前後皆親書’라고 새겨져 있다. 또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비각 정면에는 “前峯後巖於千萬年 歲辛卯九月六日欽涕書”라 새긴 현판을 달았다. 비각은 무익공계 양식으로 팔작지붕이다.

  정순왕후 송씨는 단종이 영월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궁궐에서 추방당한 정순왕후는 동대문 밖 숭인동 산기슭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18세에 과부가 된 송씨는 머리를 깎고 희안(希安)·지심(智心)·계지(戒智) 세 시녀를 데리고 정업원 암자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지냈다고 한다. 정업원에 머물며 평생 동안 아침저녁 동쪽에 있는 산봉우리에 소복하고 올라 단종의 유배지인 동쪽 영월을 향해 통곡했다하여 ‘동망봉(東望峯)’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정업원淨業院)은 여승방(女僧房)으로 원래 창덕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성 안에 있는 것인데, 성 밖에 있었다는 전설에 따라 이곳에 비를 세우고 비각도 짓게 되었다. 이는 정순왕후 송씨가 동대문 밖인 이곳에서 지냈던 사실과 정업원의 주지로 있었던 일이 얽혀서 잘못 전해온 것으로 보인다. 조정에서는 근방에 집을 지어주고, 영빈정동(英嬪貞洞)이라 부르게 하였으나 송씨는 끝내 그 집에 들지 않고 정업원에 머물렀다. 그리고 자줏물 들이는 염색업으로 여생을 때묻히지 않고 살았다 해서 그 골짜기를 지금도 '자줏골'이라고 부른다. 서울 도성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의 한 지봉인 동망봉에 위치한 청룡사(靑龍寺)의 전신이다.

  영조는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는 글을 써서 비석을 세우게 하고, 또한 '동망봉(東望峰)'이란 석 자를 써서 정순왕후 송씨가 올랐던 바위에 새기게 하였다. 그러나 일제 때부터 광복 후까지 채석장이 되면서 바위산이 깨어져 나가 글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쪼개진 절벽만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숭인동 산3번지

* 단종의 영월 장릉: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17451

 

* 정순왕후 송씨의 남양주 사릉: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11541

 

* donga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23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