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에서는 상설전시관 2층 불교회화실(상설전시관 2층)에서 테마전 ‘청룡사 괘불(靑龍寺 掛佛)’을 개최한다. 6월 2일(화)부터 11월 29일(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는 의식용 괘불 전시의 일환으로 우리 관에서 2006년부터 개최하기 시작하여 올해로 열 번째에 이른다.
안성 청룡사(安城 靑龍寺)는 고려 말 왕사이자 학승이자 왕사였던 나옹(懶翁)이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었다. 나옹은 현재 청룡사에 이르자 기이한 자색구름이 일어 사찰을 세우자 하늘에서 꽃비가 떨어지고 연못 속에서 용이 꿈틀거렸다고 한다. 그래서 산의 이름은 서운산(瑞雲山)으로, 사찰의 이름은 청룡사(靑龍寺)로 지었다.
청룡사 영산회괘불탱(靑龍寺 靈山會掛佛幀, 보물 제1257호)은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크기 730×607cm에 삼베 바탕에 채색하여 그린 대형 불고 회화이다.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불(釋迦佛)을 중심으로 6대 보살, 10대 제자 등이 에워싼 모습인데, 중앙의 석가불은 머리에서 빛이 나고 특이하게도 오른손은 어깨 위로 들고 왼손은 무릎에 올린 시무외인(施無畏人)의 손모양을 하고 있으며, 다리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모습이다. 관을 쓴 제석천(帝釋天), 면류관(冕旒冠)에 홀(笏)을 든 범천상(梵天像), 책과 연꽃·정병 등을 들고 있는 6명의 보살 등이 석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석가 위로는 여러 제자들과 부처의 수호신인 4명의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있고, 그림의 맨 윗부분에는 여러 불상들이 작게 그려져 있다. 주로 진한 붉은색과 청색이 많이 사용되었고 복잡한 구도로 인해 무거운 느낌이 들지만 윗부분에서 보여주는 화려함과 아랫부분의 무늬로 인해 여유있어 보인다. 법회(法會)에 모인 많은 청중 중에서 부처의 앞쪽에 가사와 장삼을 입고 승려처럼 머리를 깍은 인물이 뒤돌아 앉아 있는데 그는 석가의 제자 중 가장 지혜로운 사리불(舍利佛)이다. 사리불은 설법을 듣는 청문자(聽聞者)인데 이 도상은 명대(明代) <법화경변상도>에 이어 조선전기 <법화경변상도>의 영향을 받아 그려진 것으로서 괘불에서는 <청룡사 괘불> 등 3점에만 등장하는 보기 드문 예이다. 당시 불교의식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죽은 많은 영혼들을 위무하기 위해 법당(法堂) 내부에서외부 공간으로 이동하여 괘불을 걸고 죽은 이들을 천도(遷度)하기 위한 대승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의식이 거행되고 석가모니와 영취산 설법이 그려진 괘불이 법당 밖에 걸리면 현세(現世)의 공간은 석가가 머무는 정토(淨土)로 바뀐다.
청룡사는 인평대군(麟坪大君, 1622~1658)의 원당(願堂)으로 1658년 괘불을 조성하면서 주상전하(主上殿下)와 왕대비전하(王大妃殿下), 왕비전하(王妃殿下), 세자저하(世子邸下)의 안녕을 받들어 모신다는 축원문(祝願文)과 성주(城主) 김홍석(金弘錫)이 괘불 조성을 위해 향대(香臺)를 시주하였다는 내용이 화기(畫記)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화원(畫員) 사과(司果) 박란(朴蘭)을 비롯한 승려 명옥비구(明玉比丘) 등 5명이 성대한 괘불 제작에 참여한 일은 불화의 조성이 왕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
불화는 보통 붉은 색, 녹색, 남색의 진채(眞彩) 위주로 그려지는데 비해, 청룡사 괘불은 담채(淡彩)의 사용으로 맑고 산뜻한 느낌을 주며 노란색, 하늘색 등의 중간색이 조화를 이룬다. 천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천개(天蓋)와 바닥에 그려진 꽃문양, 채운(彩雲) 등이 산뜻한 채색과 어우러져 석가가 머무는 곳이 정토淨土임을 알려준다.
이 불화는 본존의 크기가 매우 컸던 고려말∼조선초의 그림과는 달리 본존인 석가불이 작아져 상대적으로 주변 인물의 크기와 비슷해진 그림으로, 17세기 중엽 영산회상도를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기 안성시 서운면 청룡길 140, 청룡사 (청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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