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양도성(서울 漢陽都城, 사적 제10호)의 혜화문(惠化門)은 서울 성곽의 사소문 중에 북동방향에 있는 성문이다.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小門)이 설치되었는데, 이 문은 1397년(태조 5) 동문과 북문 사이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세워졌다.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弘化門)이라 하였다가 1483년(성종 4)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弘化)라고 정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 6) 혜화문으로 고쳤다.
1744년에 문루(門樓)를 새로 지은 후 한말까지 보존되어 오다가 1928년 문루가 퇴락하였으므로 이를 헐어버리고 홍예(虹霓)만 남겨 두었는데, 일제(日帝)는 1939년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의 전차길을 내면서 이마저 기단(基壇)을 헐어버려 그 형태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당시 북문(北大門)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 문은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다. 1975년부터 시작되어 1980년에 완공된 서울성곽의 일부로 1992년에 복원하였다. 이 때 도로로 인해 원래 위치에서 약간 북쪽으로 옮겨지었다.
* 문화재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94번지
서울 한양도성(서울 漢陽都城, 사적 제10호)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都城)이다.
조선 건국 초에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태조 4년(1395)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성곽을 쌓도록 하였다. 석성과 토성으로 쌓은 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동의 흥인지문, 서의 돈의문, 남의 숭례문, 북의 숙정문이고, 4소문은 동북의 홍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의 소덕문을 말한다. 동대문에만 성문을 이중으로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쌓았고, 북문인 숙정문은 원래 숙청문이었는데 이 숙청문은 비밀통로인 암문으로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았다.
세종 4년(1422)에 대대적으로 고쳤는데,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다시 쌓고 공격과 방어 시설을 늘렸다. 숙종 30년(1704)에는 정사각형의 돌을 다듬어 벽면이 수직이 되게 쌓았는데 이는 축성기술이 근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서울 성곽은 여러 번에 걸친 수리를 하였으나, 쌓는 방법과 돌의 모양이 각기 달라 쌓은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도시계획이라는 구실로 성문과 성벽을 무너뜨렸고,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더욱 많이 파괴되었다.
현재 삼청동과 장충동 일대의 성벽 일부와 숭례문, 흥인지문의 홍예문만이 남아있다. 서울 성곽은 조선시대 성 쌓는 기술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며, 조상들이 나라를 지키려는 호국정신이 깃든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낙산공원(駱山公園)은 수도 서울을 구성하는 내사산(內四山:북악산·남산·인왕산·낙산)의 하나이자 주산(主山)인 북악산의 좌청룡(左靑龍)에 해당하는 낙산은 풍수지리적으로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 모양이 낙타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낙타산으로도 불린다. 서울한양도성 사적 낙산 구간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문화환경을 복원함으로써 서울시민들에게 쾌적한 공원경관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전망과 오밀조밀한 낙산 아래 동네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촬영 명소로도 알려져 있으며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으로도 애용되고 있다. 자연 탐방을 통해 역사와 문화 교육의 장을 제공할 목적으로 조성되어 마음을 쉬어가는 명소이다. 주변 유적으로는 서울 흥인지문(서울 興仁之門): 보물 제1호), 이화장(梨花莊: 서울특별시기념물 제6호) 등이 있다.
* 문화재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산3길 7-9 (동숭동 산 2-10) 일원
. 도성대지도(都城大地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97호)는 현존하는 도성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18세기 서울의 모습을 진경산수화풍으로 실감나게 그린 지도로 한양의 52방과 329계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여 기록하고 있고, 도성의 모든 중요한 내용들이 지도 속에 총망라되어 있으며, 18세기 서울의 모습을 정교하고 섬세하게 잘 표현하였다.
. 수선전도(首善全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96호)는 김정호의 수선전도를 기초로 펜으로 필사한 지도로, 1892년 경에 제작되었으며 미국인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전하는 한글본 한양지도가 희소하고, 구한말 한양의 지명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등, 지도학사적․어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두산백과 문화유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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