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보원사지철불좌상(瑞山 普願寺址鐵佛坐像)은 높이 1.5m, 충남 서산시 운산면의 보원사지(普願寺址, 사적 제316호)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철불좌상(鐵佛坐像)은 둥그런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髻)가 낮고 팽팽한 원만형의 얼굴, 탄력 있는 가슴의 표현, 벌어진 어깨, 무릎너비가 넓은 육중한 다리 등의 존안은 젊고 밝은 표정이며 장대한 체구와 함께 9세기 말에서 10세기까지의 불상형태를 반영하고 있다. 불의(佛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의 착의법으로 간결한 옷주름을 형성하며, 비교적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군의(裙衣)로 덮힌 두 다리가 굵고 좌폭도 넓다. 양손은 절단되었지만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손모양인 것 같다. 이러한 특징들은 신라 중기(650∼775)의 석굴암본존불상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체구가 당당하고 세부의 도식화가 심화되지 않아서 광주철불좌상(廣州鐵佛坐像)으로 이어지는 신라말과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보원사지(普願寺址)에 있는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의 비문에 의하면, 탄문이 고려 광종 즉위년인 949년에 석가삼존금상(釋迦三尊金像)을 조성하고, 또 광종 6년(955)에는 왕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삼존금상을 주조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불상들이 모두 보원사지에 봉안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나, 이 철불좌상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고 여겨진다.
서산 보원사지(瑞山 普願寺址, 사적 제316호, 충남 서산시 서산리 운산면 용현리 105)는 사찰에 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내력을 알 수는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또는 삼국통일 이전 백제시대 건립된 사찰로 추정된다. 신라시대 최치원(崔致遠)이 쓴《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따르면, 화엄사·해인사 등에 더불어 신라 10산 10사찰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보원사지의 면적은 10만 2886㎡이다. 일대의 절터는 모두 경작지로 변하였으나 기와조각 등이 넓게 산재해 있어, 많은 사찰 전각들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는 석조(石槽)·당간지주(幢竿支柱)·5층석탑(五層石塔)·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법인국사보승탑비(法印國師寶乘塔碑) 등이 있으며, 이러한 유물을 통해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후 이곳에서 백제 때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이 출토되었고, 부근에 백제 때의 마애불로 유명한 국보 제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상(瑞山磨崖三尊佛像)이 있어, 삼국통일 전 백제시대부터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자료출처: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불교미술대전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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