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강화 전등사 약사전과 약사전석불좌상, 약사전후불탱

들풀/이영일 2015. 6. 20. 06:14

  강화 전등사 약사전(江華 傳燈寺 藥師殿, 보물 제179호)이 있는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세웠다고 전하지만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조선 선조 38년(1605)과 광해군 6년(1614)에 큰 불이 일어나 절이 모두 타버려, 그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하여 광해군 13년(1621)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대웅보전 서쪽에 있는 아담한 약사전은 중생의 병을 고쳐준다는 전등사 약사전석불좌상(傳燈寺 藥師殿石佛坐像,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7호)을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대웅전약사전개와중수기(大雄殿藥師殿改瓦重修記)』에 조선 고종 13년(1876) 대웅보전과 함께 기와를 바꾸었다는 기록이 보일 뿐 언제 지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고 건축 수법이 대웅보전과 비슷하여 조선 중기 건물로 짐작하고 있다.

  약사전(藥師殿)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이며 주위에는 화려한 연꽃무늬와 덩굴무늬를 그려 놓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수법이 특이하여 당시의 건축수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약사전에는 약사전석불좌상(藥師殿石佛坐像)과 약사전후불탱(藥師殿後佛幀), 더불어 사람이 죽은지 3일 만에 심판하는 현왕과 그 권속을 도상화한 약사전 현왕탱(藥師殿 現王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3호) 등 문화유산이 있다.

  전등사 약사전석불좌상(傳燈寺 藥師殿石佛坐像,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7호)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제작된 것으로 신체비례로 보아 갸름한 체구에 단아한 얼굴형을 하고 있어 고려 불상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약사여래(藥師如來像)상은 전방을 향한 얼굴에 눈을 약간 아래로 내려 뜬 단아한 얼굴과 목은 정확한 삼도(三道)가 있어 길어 보이고, 벌어진 어깨선은 자연스러워 보이며 두 손을 앞으로 모아 부처가 수행할 때 선정(禪定)에 들었음을 상징하는 선정인(禪定印)을 하였다. 그리고 약합(藥盒)을 들고 있어 전형적인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고 있는 통견(通肩)의 두꺼운 가사는 길상좌(吉祥坐)를 취한 무릎 아래까지 자연스럽게 내려졌으며 옷주름은 훤칠한 자세에 비해 약간은 형식적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부피감이 결여되고 경직된 느낌을 주는데 이는 두꺼운 칠과 금분을 정밀하지 못하게 처리하였기 때문이다.

  전등사 약사전후불탱(傳燈寺 藥師殿後佛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4호)은 조선 고종 21년(1884)에 제작된 그림으로 정사각에 가까운 화폭 중앙에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과 좌우협시(左右挾侍)인 일광·월광보살(日光·月光菩薩)을 배치하고 상하 좌우에는 사천왕(四天王)을, 약사불(藥師佛) 뒤에는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을 그린 병렬식 구도를 보이고 있으며, 색채는 18세기 후반의 색 배합을 계승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전통적인 도상을 계승하고 안정된 화면 구성, 꼼꼼한 필력을 갖추고 있어 19세기 불화양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인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전등사 (온수리)

* donga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23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