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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에서 느림으로 쉬어가게 하는 사찰. 삼각산 길상사(三角山 吉祥寺)

들풀/이영일 2015. 6. 28. 06:29

  삼각산 길상사(三角山 吉祥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삼각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고급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金英韓, 1916∼1999, 法名 吉祥華)이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요정으로 꼽혔던 대원각의 주인이 법정(法頂, 1932~ 2010) 스님의 무소유(無所有) 철학에 감화를 받아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시주하면서 아름다운 사찰로 거듭나게 되었다. 1995년 6월 13일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하였으며 1997년에 길상사로 사찰명을 바꾸어 창건하였다. 사찰 내의 일부 건물은 개축과 보수를 하였으나 대부분의 건물은 대원각 시절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경내에는 극락전, 범종각, 일주문, 적묵당, 지장전, 설법전, 종무소, 관세음보살석상, 길상화불자공덕비 등이 배치되어 있다. 사찰의 대웅전격인 극락전에는 아미타부처를 봉안하고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길상사는 승려이자 수필작가인 법정이 1997년 12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회주(會主: 법회를 주관하는 법사)로 주석하였다. 또한 매달 1회씩 ‘맑고 향기롭게’라는 제목으로 선 수련회를 여는데 일반인들도 8시간 이상 참선을 하며 산사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고,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맑은 자연 속에 고요하게 자리한 경내를 걸으면 마음까지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도심 안에 청정한 공간에 느림으로 잠시 쉬어 가고픈 사찰이다.

  길상7층보탑(吉祥七層寶塔)은 조선 중기(1600∼1650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혜와 용맹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암수 사자가 기둥 역할을 하며 입을 연 두 마리는 교(敎)를 상징하고, 입을 다문 두 마리는 선(禪)을 상징한다. 4사자 가운데 모셔진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인(手印)은 정면에서 시계방향으로 선정인(禪定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통인(通印: 통인은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與願印으로 이루어짐), 점법륜인(轉法輪印)을 하고 있다.

  이 탑은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님이 법정스님과 길상화보살님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종교화합의 의미를 전하고자 무상으로 기증하였으며 2012년 11월 11일 기단부에 오장경, 금강저, 오불(五佛), 108침향염주, 다라니 등을 봉안하였다. 이후 시절인연으로 미얀마의 제1보궁 우뚜리와 완사 큰스님이 1.600년 전 고탑(古塔) 해체 과정에서 직접 출토하신 부처님 오색정골사리, 구강사리, 응혈사리와 제자인 목건련존자, 마하가섭존자, 라훌라존자, 등의 사리를 2013년 8월 25일 탑신부에 봉안하였다.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진 이 길상보탑에서 기도한 공덕으로 부처님의 무량한 가피 받으시고, 이고득락(離苦得樂)을 발원한다.

길상화 공덕비(吉祥華 功德碑)는 일천억 원대의 옛 요정 대원각(大元閣)을 시주하여 수행사찰 삼각산 길상사(三角山 吉祥寺)를 1997년 창건하는 아름다운 법석에서 법정 스님으로부터 염주 한 벌과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法名)을 내려 받은 김영한(金英韓, 1916∼1999)여사의 공덕비다.

  공덕주 길상화(吉祥華, 본명은 金英韓) 보살은 1916년 민족사의 암흑기에 태어나 16세의 나이로 뜻한 바 있어 금하(琴下) 하규일 문화에서 진향(眞香) 이란 이름을 받아 기생으로 입문하였다. 1937년 천재시인 백석으로부터 자야(子夜)라는 아명으로 불리었던 그녀는 1953년 중앙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생전에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 등의 저술을 남겼다.

  1955년 바위 사이 골짜기 맑은 물이 흐르는 성북동 배밭골을 사들여 대원각이란 한식당을 운영하던 그녀는 1987년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하고 7천여 평의 대원각 터와 40여 동의 건물을 절로 만들어 주기를 청하였다. 시가 천억 원대의 대원각을 통째로 시주하겠다는 고집과 이를 한사코 마다하려는 스님 사이의 줄다리기는 1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결국, 그 고집을 꺾지 못한 법정 스님은 대원각을 조계종 송광사의 서울분원, '맑고 향기롭게' 운동의 근본 도량으로 창건하게 된다. 그녀의 인생 전부와도 다름없을 대원각을 시주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길상화 보살은 아깝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 큰 재산도, 그 사람의 시 한 줄만은 못하다." 라고 그녀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꽃다웠을 이십대 초반의 사랑을 잊지 못했다 한다.

  길상화 보살이된 그녀는 “나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산헌 뒤뜰에 뿌려 주시오.” 라는 유언을 남기고 1999년 11월 14일 육신의 옷을 벗었다. 다비 후 그녀의 유골은 49재를 지내고 첫눈이 온 도량을 순백으로 장엄하던 날 길살헌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졌으며, 무주상보시의 귀한 뜻을 오래도록 기리고자 2001년 11월 21일 그 자리에 공덕비를 세웠다. 백석(백기행, 1912∼1996)이 사랑한 김진향(김영한)에게 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시 한 편이 공덕비 안내 표지판에서 백석과 김영환의 사랑을 짐작하게 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와 나타샤는/ 눈이 푹푹 샇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시골로 가자 출출이(뱁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막살이집)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법정 진영각(法頂 眞影閣)에 들려 생전의 유품과 뜰에 아주 자고 소박한 법정스님 유골을 모신 탑을 보면 무소유의 실천이 더욱 큰 울림으로 가슴에 와 닫는다. (자료출처: 길상사, 두산백과, 마로니에북스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선잠로5길 68 길상사(조계종)

* donga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24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