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동구릉의 건원릉(九里 東九陵 健元陵. 사적 제193호)은 조선 제1대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 1335~1408, 재위: 1392~1398)의 능이다.
능제구성은 조선왕릉제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능제는 전체적으로 고려왕릉 중 가장 잘 정비된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玄正陵) 제도를 따르고 있으나, 고려시대에는 없던 곡장을 봉분주위에 두르는 등 세부적으로 석물조형과 배치 면에서 일정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석물조형은 남송말기의 중국풍을 거의 따르고 있다. 봉분에는 다른 왕릉들처럼 잔디를 심지 않고 억새풀을 덮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해 태종이 고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덮어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동구릉에서 가장 중앙 깊숙한 곳에 위치하여 조선왕릉 가운데 가장 높고 웅장한 봉분의 아래 부분은 다양한 문양을 새긴 12면의 화강암 병풍석이 둘러싸고 있다. 병풍석에는 열두 방향의 악재로부터 왕릉을 보호하기 위해 십이지신상을 새겼다. 병풍석 밖으로는 12칸의 난간석을 둘렀고, 난간석 밖으로는 석호와 석양이 네 마리씩 교대로 배치되어 왕을 지키는 영물들로, 밖을 향하여 언제든지 방비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이 있는데, 혼유석 밑에는 도깨비가 새겨진 북 모양의 고석 5개가 놓여있다. 한 단계 아래쪽에는 장명등과 석마 한 필씩이 딸려 있는 문석인이 놓여 있고, 그보다 더 아래쪽으로는 무석인과 석마가 양쪽에 놓여 있다.
태조는 생전에 계비 신덕왕후와 함께 묻히기를 원해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貞陵)에 자신의 묏자리를 마련해두었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은 태종은 부왕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신덕왕후의 능을 도성 밖으로 이장하고, 태조의 능을 지금의 자리에 조성하였다. 보통 능호는 외자로 하지만 건원능만 두 자이다.
건원릉 억새풀 이야기: 돌보지 않은 듯한 태조의 능 건원릉을 제외한 다른 조선왕릉의 봉분은 푸른 잔디가 덮여 있으며 반듯하게 손질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을 세운 태조의 위엄있고 웅장한 건원릉에는 언뜻 보면 마치 한동안 손보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것으로 여겨질 만큼 잔디가 아닌 억새풀이 무성하다. 고향땅에 잠들고 싶었던 조선를 창업한 태조의 특별한 유언 때문이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하는 위업을 이뤘지만, 그 후 왕자들이 형제간의 살육을 마다하지 않으며 벌이는 권력 다툼을 겪는 등 무거운 마음의 짐을 안은 채 말년을 보내야 했다. 승하하기 전 태조는 왕 이전의 한 사람으로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 땅의 흙과 풀 아래 잠들고 싶은 마음을 유언으로 남긴 것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인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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