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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농사를 중히 여겼던 서울 선잠단지(서울 先蠶壇址)

들풀/이영일 2015. 6. 30. 04:49

  서울 선잠단지(서울 先蠶壇址, 사적 제83호)는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중국 고대 황제의 황비 서릉씨(西陵氏)를 누에신(蠶神)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 단은 고려 성종 2년(983)에 처음 쌓은 것으로, 단(壇)의 남쪽에는 한 단(段) 낮은 댓돌이 있고, 그 앞쪽 끝에 상징적인 뽕나무를 심고 궁중(宮中)의 잠실(蠶室)에서 누에를 키우게 하였다.

  양잠(養蠶)의 기원은 상고시대부터 시작되었으나 선잠단을 쌓은 것은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고, 선잠단(先蠶壇)은 조선 초기부터 운영되었으나, 이 단(段)은 1473년(성종 4)에 마련한 것으로 단의 크기는 한 변이 2장 2촌이고, 높이는 2장 7촌인데 세종 때 정한 단의 규모와는 조금 다르다.

  특히 세종대왕(世宗大王)은 누에를 키우는 일을 크게 장려했는데, 각 도마다 좋은 장소를 골라 뽕나무를 심도록 하였으며, 한 곳 이상의 잠실(蠶室)을 지어 누에를 키우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중종 원년(1506)에는 여러 도에 있는 잠실을 서울 근처로 모이도록 하였는데 지금의 강남 잠실이 바로 옛 잠실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임금은 친경(親耕)이라 해서 농사짓는 시범을 보이는 창덕궁 후원 옥류천 일원의 청의정(淸漪亭)에서 그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가늠하기 위해 궁궐 안에 벼농사 경작지를 조성하여 농사를 주관했던 친경례(親耕禮)와 왕비는 친잠(親蠶)이라 해서 창덕궁 뽕나무(昌德宮 桑木. 천연기념물 제471호)를 가꾸면서 친잠례(親蠶禮)를 하면서 누에치는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의식(衣食)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농사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백성의 애환을 궁궐 안에서나마 헤아리려는 군주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선잠단(先蠶壇)의 설치 이후 매년 음력 3월의 길한 사일(巳日, 뱀날)에 제사를 지냈다. 1908년(융희 2) 제사 제도를 개정할 때 선잠단(先蠶壇) 신위를 선농단(先農壇) 신위와 함께 사직단(社稷壇)으로 옮겨 배향(配享)하게 하면서 폐허화(廢墟化)되어 한말(韓末)에는 461평의 터전만이 남았으며, 1910년 이후에는 민유화(民有化)되었으나, 현재는 그 위치에 ‘선잠단지(先蠶壇址)’라는 팻말이 세워지고 주변을 정리하여 보존하고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64-1번지

* 창덕궁 후원 뽕나무와 친잠례 이야기: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6881

 

* 창덕궁 후원 청의정 친경례 이야기: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15846

 

* donga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24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