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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음식디미방체험 아카데미’ 영양군 팸투어

들풀/이영일 2015. 7. 11. 21:10

2015 음식디미방체험 아카데미 제6기 팸투어를 영양군(군수 권영택)이 한국관광클럽(회장 이충숙) 회원사와 언론사 기자단을 9일과 10일(1박2일) 초청하여 실시하였다.

이번 팸투어는 두들마을 여중군자 장계향 관련 유적지 탐방을 시작으로 석계고택. 석천서당. 원리 주곡고택. 유우당. 남악정. 광록정 둘러보기, 북카페 두들책사랑과 광산문학연구소 방문(소설가 이문열과 광산문학관), 음식디미방 전통주제조체험(칠일주), 음식디미방 설명 및 체험(음식디미방보존회장), 장계향의 삶과 음식디미방 관련 강연(재령 이씨 석계공파 13대 종손 이돈 선생, 여중군자 장계향 예절관), 두들마을 고택체험, 석류탕 만들기 체험(음식디미방보존회), 주실마을 역사와 문화유적지 및 관광지 탐방(지훈문학관, 조지훈 생가 방문), 선바위 탐방, 영양 서석지(중요민속문화재 제108호) 탐방,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국보 제187호), 음식디미방체험 아카데미 수료증 전달식 등 우리의 전통문화와 문학의 향기가 넘치는 고장에서 관광의 또 다른 멋을 선사하는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기대 된다.

두들마을은 1640년 (인조 18년)에 석계 이시명(李時明) 선생이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시명 선생은 1674년 안동으로 옮겨 갔으나, 그의 사후 넷째아들인 이숭일이 다시 고향인 이곳에 돌아와 살게 되었고 후손들이 계속 더해져 재령이씨의 집성촌 마을이 되었다. 조선 고종때 국립병원인 광제원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원두들'이라 불리웠다가, '원리리'로 변경 되었다고 한다. ‘두들’은 ‘두드러지다’ 혹은 ‘돋다’에서 갈라져나온 ‘둔덕’의 순 우리말로 이는 ‘언덕 위의 마을’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여졌다. 마을 뒤로는 두들산이 있고 앞에는 화매천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지형이다.

마을옆 둔덕에 석계 이시명 선생이 지은 석천서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9호)과 석계고택이 남아 있고, 마을앞을 흐르는 화매천가에는 이시명 선생의 넷째아들인 이숭일이 새겼다고하는 동대(東臺), 서대(西臺), 낙기대(樂飢臺), 세심대(洗心臺) 등의 글씨가 새겨진 암석(巖石)들이 남아 있다.

두들마을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바로 이시명 선생의 정부인 안동 장씨 여중군자 장계향(女中君子 張桂香)인 저술한 최초의 한글요리책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의 저자라는 점이다. '음식디미방'이란 '좋은 음식맛을 내는 방문'이란 뜻으로 정부인 장씨가 일흔이 넘어서 1600년대의 경상도 양반가의 음식 조리법과, 저장, 발효 식품 등 146가지의 음식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는 요리책이다. 시(詩)·서(書)·화(畵)와 성리학에 능하여 조선시대 여인 중 유일하게 여중군자(女中君子)라 불렸다고 알려져 있다.

두들마을에서는 정부인 장씨예절관과, 전통음식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실제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조리법대로 약 40여가지의 음식을 복원하여 상차림을 내고 있다. 채소와 해산물을 주재료로 찌거나 구워 재료 고유의 향과 맛이 살아 있는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석계고택(石溪古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1호)은 마을의 대표적인 전통 가옥으로 인조와 현종 시대의 학자인 석계 이시명(石溪 李時明, 1590∼1674)과 부인 안동 장씨가 살았던 집이다. 선생은 안동에서 세상을 떠났으나, 정부인은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다. 一자형의 사랑채와 안채는 흙담으로 막아 허실감을 메우고 뜰집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하였다. 사랑채에는 대문을 중심으로 사랑방과 사랑마루를 두었으며, 왼쪽에는 마구간과 창고방을 시설하였다. 기존 종가집과 달리 지붕 끝에 세우는 기와(망와, 望瓦)가 없고 사랑채 지붕이 팔작지붕이 아닌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또한 이 집에는 곳간채가 없고 주변으로 토석담장이 둘러져 있어 간결하고 검소한 양반가옥의 전형으로 불린다.

석계선생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의 학통을 이은 학봉 김성일(鶴峰 金誠一)의 제자 경당 장흥효(敬堂 張興孝)의 문인으로 일찍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입신양명하지 않고 일생을 학문연구에 전념하였다. 이곳을 자연지형을 본따 아호를 석계(石溪)라 하였다.

현재 마을에는 약 30여 채의 전통가옥이 남아 있으며 이들은 새롭게 들어선 한옥 건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유우당(경상북도 민속자료 285호)은 1833년(순조 33년 항일시인 이병각의 집이다. 18세기 초에 세워져 1830년 이곳으로 이건된 주곡고택(做谷古宅, 경북민속자료 제114호), 17세기 후반 세워져 이현일이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던 남악정(南嶽亭, 경북 문화재자료 제80호)이 보존되어 있다. 보릿고개로 힘든 주민들을 위해 구휼식당을 배급하던 낙기대(樂飢臺)도 남아있다.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이기도 하다. 광산문학연구소가 있는데, 세미나등 다양한 문학 관련 행사가 열리기도 하며, 이문열의 집필실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한국관광공사, 두산백과 문화유산정보)

* 주소지: 경북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길 77 (원리리)

* donga.com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24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