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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찾아가는 조지훈 시인의 영양 주실(英陽 主室)마을

들풀/이영일 2015. 7. 14. 06:16

영양 주실(英陽 主室)마을은 한양조씨가 한양을 떠나 이곳에 집성촌을 이룬 곳이다. 산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고택들이 전통적인 유교문화의 숨결을 느끼게 해준다. 마을 입구에서 보면 마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일명 주실쑤라는 숲이 있는데 장승을 뜻하는 사투리를 섞어 수구막이 숲이라고도 하였다. 수령 100년의 소나무와 250여년의 아름드리 느티나무, 느릅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시인의 숲이라 불리고 있다. 옛부터 이곳 주실마을은 붓을 닮은 문필봉(文筆峰)이 있어 문필가나 학자가 많이 나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호은종택도 정면으로 문필봉을 바라보고 있는 곳에 터를 잡고 있는 고택이다. 이곳 작은 시골 주실마을은 청록파 시인이자 지조론의 학자였던 조지훈을 비롯하여 한국 인문학의 대가 조동일, 조동걸, 조동원 교수 등 우리나라 역사에 남을 14명의 박사와 인재가 나왔다. 현재 약 50여 가구가 남아 주로 고추 농사 등을 지으며 생활 하고 있으며, 조지훈 선생의 생가 외에 옥천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2호), 지훈문학관, 또한 조지훈 선생이 수학한 월록서당(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172호), 만곡 조술선생의 만곡정사 등의 문화 유적이 있다. 호은종택과 조지훈문학관 사이의 길에 조지훈의 시 20여 편을 돌에 새긴 시공원은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조지훈(趙芝薰, 1920∼1968년)은 오대산 월정사에서 불교전문강원 강사를 지내며 불경과 당시(唐詩)를 탐독,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 고려대학교 교수, 6·25 때는 종군작가, 승무의 동작과 분위기가 융합된 고전적인 경지를 노래한 승무(僧舞), 주권 상실의 슬픔과 민족의 역사적 연속성이 중단됨을 고지(告知)한 봉황수(鳳凰愁) 등의 대표적인 시가 있고 민족적 전통이 담긴 시작(詩作)과 지조론(志操論) 등의 평론(評論)을 남겼다. 박목월(朴木月), 박두진(朴斗鎭)과 더불어 공동으로 간행한 청록집(靑鹿集)의 시편들에서는 주로 민족의 역사적 맥락과 고전적인 전아한 미의 세계에 대한 찬양과 아울러 ‘선취(禪趣)’의 세계를 노래하였다.

지훈문학관(芝薰文學館)은 청록파 시인이자 지조론의 학자 조지훈선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문학관이다. 전시실과 시청각실이 갖춰져 있으며, 주요 전시물로는 살아생전 지훈선생의 유품과 육성녹음테이프, 시낭송테이프 등 다수가 전시되어 그의 사상과 철학, 문학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현판은 부인 김난희(金蘭姬) 여사가 직접 썼다.

조지훈생가(趙芝薰生家, 경상북도기념물 제78호)는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으로 근대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국문학자였던 조지훈이 태어난 곳이다. 조선 중기인 1629년(인조 7년)에 영양군 주실마을에 처음 들어온 호은 조전(壺隱 趙佺)이 살았던 곳이며 둘째 아들 조정형(趙廷珩)이 현재의 집을 지었다. 조전은 한양조씨로 선대가 서울을 근거지로 살았는데 1519년 조광조가 연루된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멸문의 화를 면하기 위해 전국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당시 호은공은 주실마을로 피신하여 살게되었다. 집터를 잡을 때 매방산에서 매를 날려 매가 앉은 자리에 집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면적은 1,365㎡으로, 영남지방 주택의 전형적인 형태인 ㅁ자집이며 안채인 정침(正寢)과 관리사로 나뉘어 있다.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7칸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면의 사랑채는 정자 형식이며, 서쪽에 조지훈의 태실이 있는데, 한말 의병장 조승기(趙承基), 6·25전쟁 때 자결한 조지훈의 조부 조황석(趙黃錫) 등이 태어난 곳이다. 대문과 중문에는 한말부터 태극기를 조각·채색하여 끼워두고 있다.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63년에 복구하였고, 1994년 안채와 문간채, 곳간채 등을 보수하였다.

호은종택(壺隱宗宅)에 사는 조씨를 가리켜 칼날 같은 남인(南人)집안이라 하여 검남(劍南)이라 불렀는데, 이 집안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 호은(壺隱) 때부터 370년 동안 전해져 오는 가훈(家訓)은 삼불차(三不借)인데 재물(財不借)과 사람(人不借, 양자) 그리고 문장(文不借)을 빌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말고 살자는 정신이다.

주실(主室)마을에는 옥천종택에만 우물이 하나 있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이 우물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마을이 하늘에서 내려다본 전경이 배 모양이라 하여 살공 등짝이 서로 맞닿아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주실(主室) 또는 주곡(主谷)이라고 부른다. 배 형상의 마을이라 우물을 파면 배에 구멍이 생겨 가라앉는다는 풍수설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옥천종택의 우물을 길어다 먹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우물은 이것 하나뿐이라고 한다. 대신 50여리 떨어진 곳에 수도파이프를 연결하여 식수를 해결 하고 있다고 한다. (자료출처: 두산백과, 영양군청 문화관광과: http://tour.yyg.go.kr)

* 문화재 소재지: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실길 27(주곡리 201)

* donga.com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24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