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천서당(石川書堂,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9호)은 석계 이시명(石溪 李時明, 1590∼1674)이 1640년(인조 18)에 네 아들과 같이 석보에 이주하여 낙기대(樂飢臺)에 터를 잡고 그 거소를 석계초당이라 하고 14년 동안 이곳에서 살았다.
이시명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재령 이씨(載寧 李氏), 영해(寧海)출신으로 현감 함(涵)의 아들이며, 이조판서 현일(玄逸)의 아버지이다. 1612년(광해군 4) 생원진사시에 급제하였으나 정치가 혼란하고 1636년 병자호란의 치욕까지 당하자 벼슬길을 포기하고 은거하면서 후진양성에 주력하였다.
석계 사후에 1676년(숙종 2) 상을 마친 넷째아들 이항재(李恒濟)가 돌아와 선업을 이었는데 이항제가 죽은 뒤 그 유적지를 그대로 둘 수 없어 자손들과 유림들이 초당을 중건하고 석천서당을 창건하였다. 1770년(영조 46)에 기공하여 1771년에 준공하였다. 그뒤 1891년(고종 28)에 중수하면서 2칸을 더 지었다.
석천서당에는 수산수진수창(首山粹辰酬唱) 석계기(石溪記), 과석계유허유감(過石溪遺墟有感), 갈암차운(葛菴次韻) 석천서당 중수기(石川書堂 重修記) 등이 있다. 또한 서당고(書堂庫)에는 안릉세전(安陵世典), 석계선생문집(石溪先生文集), 정부인안동장씨실기(貞夫人安東張氏實記), 정묵제선생문집, 항제선생문집, 영천집 등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31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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