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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화의 산실, 진도 운림산방(珍島 雲林山房, 명승 제80호)

들풀/이영일 2015. 8. 26. 09:22

  진도 운림산방(珍島 雲林山房, 명승 제80호)은 조선말기 남종화(南宗畵)의 대가인 소치 허련(小癡 許鍊, 1808∼1893)이 조성하여 말년에 거처하면서 창작과 저술 활동을 하던 곳으로서「소치실록(小癡實錄)」에 따르면 큰 정원을 다듬고 아름다운 꽃과 희귀한 나무를 심어 선경(仙境)으로 꾸민 곳이다. 1982년 소치의 손자인 남농 허건(南農 許楗)이 복원하여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운림산방(雲林山房)이란 이름은 첨철산(尖察山)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 모습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 한다.

운림산방은 경사지에 세워졌으며, 맨 위쪽에 허유(許維: 후에 鍊으로 개명)의 초상화(畵像)를 모신 운림사(雲林祠)가 있다. 운림사 오른쪽 뒤편에 사천사(斜川祠)가 있다. 돌담으로 둘러진 안쪽에 소치선생이 기거하던 살림집이 있고 그 전면 우측에 허유가 머물던 사랑채가 있다. 살림집 앞에 1978년에 재건한 소치선생이 그림을 그리던 화실 운림산방이 있다. 그 앞에는 가로 33m, 세로 27m 크기의 연못(일명: 雲林池)이 있고 중앙에는 작은 섬이 있다. 이 섬에는 허유가 심은 배롱나무 한 그루가 있다. 운림사에는 초상화 이 외에도 세한도(歲寒圖), 벽계청장관(碧溪靑館), 적취산방(積翠山房)의 편액이 걸려 있다.

세한도(歲寒圖, 국보 180호,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세한도(歲寒圖)’라는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蕅船是賞)’은 우선(蕅船)은 이상적의 호(號)로 ‘이상적은 감상하게나!’라는 의미와 ‘장무상망(長毋相忘)’의 인장은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즉, ‘나는 그대의 그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않겠네. 그대 또한 나를 잊지 말게나. 고맙네. 우선!’이라는 뜻으로 스승이 제자의 변함없는 사랑을 표현 하였다.

‘벽계청장관(碧溪靑館)’ 편액을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가 소치(小癡)에게 당호(堂號)를 예서로 써서 주어 운림산방에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편액은 추사의 글씨가 아니고 서예가 강암 송성용(剛菴 宋成鏞)의 전서란다. '파도가 치는 큰 바다가 있어도 요동하지 않고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집'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적취산방(積翠山房)의 편액은 “山深多宿鳥/ 산이 깊으니 잠자는 새가 많다. 積翠山房 南農 許楗 作”의 작품으로 보아 남농 허건의 화실 이름이다.

운림산방은 ㄷ자형 한식 기와로 정면 우측 3칸은 화실이며 나머지는 방으로 꾸몄다. 구조는 장대석으로 외벌대 기단을 형성하고 그 위에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굴도리집이다. 안채는 一자형 초가로 평면구성은 좌로부터 각 1칸씩 방, 부엌, 안방, 웃방, 광의 순으로 배치하였다. 중앙의 안방 앞쪽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사랑채는 막돌 초석 위에 네모기둥을 세운 민도리집으로 4칸 규모의 一자형 초가집이다. 왼쪽 끝 1칸은 안채로 들어가는 통로로 만들었으며 오른쪽에는 2칸의 광과 1칸의 방을 배치하였다. 구조는 안채와 비슷한 민도리집이며, 기단은 낮은 토단이다. 운림사는 1983년 건립된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막돌허튼층쌓기 기단 위에 다듬은 원형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1고주 5량 구조이며, 공포는 주간마다 1구씩의 공포를 배치한 다포식이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사천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며 구조는 막돌허튼층쌓기 기단 위에 원형 장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운 2익공식이다.

허련(許鍊)은 본관 양천(陽川), 자는 마힐(摩詰), 호는 소치(小痴)이며 초명이 허유(許維)이다.「소치小癡」라는 아호는 스승인 추사(秋史)께서 내려 주셨다. 시(詩)와 문(文)을 20대에 해남 대흥사『동다송東茶頌』의 저자 초의선사(艸衣禪師)에게 학문을 익히고 『세한도歲寒圖』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문하에서 서화(書畵)를 배워 남종화의 거목으로 조선조 후기의 일세를 풍미(風味) 하였으며 그의 화맥은 자자대대로 이어져 200여년동안 5대(五代)에 거쳐 9인의 화가를 배출 하였다. 詩∙書∙畵에 뛰어나 三絶이라는 칭송까지 받는 그의 작품은 강한 느낌을 주는 갈필(마른붓질) 산수화가 주를 이루었지만, 노송-노매-모란-괴석 등 문기가 뛰어난 문인화 또한 일품이었다.

선생은 헌종대왕(憲宗大王)의 총애를 받아 어연(御硯)에 먹을 갈아 대왕을 상징하는 화중지왕(花中之王)이라는 모란(牡丹)을 그려 바쳤고, 왕실 소장의 고서화를 평(評)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화가로 추앙받아 극치의 영애를 누렸으며, 여생을 화성(畵聖)처럼 살았다. 대표작으로 57세(1866) 에 운림산방을 그린 선면산수도와 스승 김정희의 초상, 묵모란, 파초 등이 있으며, 꿈처럼 지나간 세월을 기록한 몽연록(夢綠錄)이 수록된「소치실록小癡實錄」이라는 자서전을 남겼다.

운림산방 일지매(雲林山房 一枝梅)의 유래는 소치선생이 가꾼나무가 세 그루 있었는데 일지매와 백일홍, 그리고 자목련이다. 일지매는 해남 대흥사 일지암의 초의선사께서 소치가 운림산방을 열자 선물한 나무로 알려진다.

소치기념관(小痴記念館)에는 소치와 허련의 3남 미산 허형(米山 許瀅)과 손자 남농 허건(南農 許楗) 허씨 집안 3대의 복제화·수석·단지·그릇 등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珍島 雙溪寺 常綠樹林, 천연기념물 제107호)은 진도읍에서 약 8㎞ 떨어진 첨찰산(尖察山) 산기슭에 자리잡은 쌍계사(雙溪寺)옆에 위치하고 있다. 상록수림을 구성하고 있는 식물로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참가시나무, 감탕나무, 졸참나무, 느릅나무, 말오줌때, 쥐똥나무 등과 지역특산식물인 삼색싸리와 돌팥이라 불리는 돌동부 등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상록수림들 중의 하나다.

운림산방은 넓고 울창한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珍島 雙溪寺 常綠樹林, 천연기념물 제107호)이 있는 첨찰산(尖察山)과 남도전통회화(南道傳統繪畵)의 산실로 자연유산과 역사문화유산이 어우러진 역사적·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경내에는 남도전통미술관(南道傳統美術館)과 진도역사관(珍島歷史觀)이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두산백과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전남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등 (사천리)

* donga.com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25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