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석보 권15(月印釋譜 卷十五, 보물 제745-10호)는 순창(淳昌) 구암사(龜巖寺)에서 발견된 책이다. 그 동안 완전한 상태로 전존(傳存)되는 판본이 없었다는 점에서, 초간본(初刊本)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월인석보(月印釋譜)는 조선 전기 2대에 걸쳐 임금이 편찬·간행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불교 서적을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세조가 1459년(세조 5)에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민중을 불교에 귀의하게 하기 위해 석가모니(釋迦牟尼)의 가계와 그 일대기(一代記)를 기록한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지어 올렸는데, 세종이 이 석보상절을 보고 몸소 석가모니의 공덕(功德)을 칭송하여 노래를 지으니, 이 지은 노래를 한데 묶은 책)을 본문으로 하고 자신이 지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그에 대한 주석의 형식으로 합편하여 내용의 일부를 수정하고 보완하여 간행한 새로운 책이다. 월인석보의 ‘월인’은 월인천강지곡에서, ‘석보’는 석보상절에서 각각 따 온 것으로 서문서명(序文書名)과 판심서명(版心書名)에 일치하는 것이다. 월인석보의 편찬 경위는 세조(世祖)가 수양대군(首陽大君) 시절에 세종의 명을 받아 모후인 소헌왕후(昭憲王后 沈氏)의 명복(冥福)을 빌기 위해 석보상절 전 24권을 지었는데, 그것을 보고 세종이 친히 월인천강지곡 전3권을 지었다는 것이다.
월인석보 권15(月印釋譜 卷十五, 보물 제745-10호)는 1998년에 소개된 바 있는 성암본(誠庵本)이 모두 30장에 불과한 점으로 보아, 구암사본(龜巖寺本)은 비록 앞뒤의 표지(表紙)가 결락되어 있으나, 그 동안 완전한 상태로 전존(傳存)되는 판본이 없었다는 점에서, 초간초쇄본(初刊初刷本)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물 제745호로 지정된 월인석보 중 빠진 권수를 보완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본문에 낙장(落張)이 전혀 없는 완전한 초간 초쇄본(初刊 初刷本)이라는 점과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된 이후 불교와 관련한 최초의 언해서(諺解書)라는 점에서 사료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문헌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조선 초기에 유통된 중요 경전이 취합된 것이므로 당시 불교 경전의 수용 태도를 살필 수 있다.
영구산 구암사(靈龜山 龜巖寺)는 노령산맥에 위치하고, 국립공원인 백양사(長城白羊寺)와 내장사(井邑內藏寺)의 중간지대 영봉으로 연접하고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백제 무왕 37년(서기 636년) 숭제선사(崇濟禪師)에 의해 창건, 1392년(태조 원년) 각운선사(覺雲禪師)가 중창하였다. 구암사라 함은 사찰 동편 지점에 숫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고, 대웅전 밑에는 암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암사(龜巖寺)라 했으며, 신령스러운 거북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영구산(靈龜山)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전북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 구암사 (봉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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