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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馬韓)의 문화. 나주 반남 고분군(羅州 潘南 古墳群, 사적 제513호)

들풀/이영일 2015. 12. 2. 07:10

  나주 반남 고분군(羅州 潘南 古墳群, 사적 제513호)이 있는 반남(潘南)은 영산강(榮山江) 지류인 삼포강(三浦江)을 중심으로 고대문화의 꽃을 피운 곳으로 자미산(紫薇山)을 중심에 두고 약 40여기의 고분이 대안리(大安里), 신촌리(新村里), 덕산리(德山里)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처음으로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진 이 고분군(古墳群)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대형옹관(大形甕棺)과 함께 금동관(金銅冠), 금동신발(金銅飾履), 봉황문 고리자루칼(換頭大刀) 등 최고 권력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옹관고분(甕棺古墳)은 고구려의 적석총(積石塚), 백제의 석실분(石室墳), 신라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 가야의 석곽묘(石槨墓) 등과 달리 영산강 유역에만 분포하던 독특한 묘제이다. 이른 시기의 옹관고분은 지면을 약간 파고 옹(甕)을 반쯤 안치한 후 그 위에 낮은 분구를 쌓았으나 후대에는 분구를 쌓은 후 정상부에 흙을 되파고 옹관을 안치하였고 분구의 규모도 커진다. 이처럼 옹관을 묘제로 사용하는 형식은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며, 한국에서도 신석기시대부터 묘제의 일부로 사용하던 것이다. 그러나 영산강 유역의 옹관고분처럼 대형 전용 옹관을 사용한 예는 없으며 영산강 유역 토착세력에 의해 완성된 묘제로 이해되고 있다.

  - 겹아가리단지(二重口緣短頸壺土器, 삼국시대, 나주 신포리 유적과 장성 남평리 환교유적), 영광 화평리 수동유적(삼국시대, 단지∙목걸이∙새무늬청동기∙본뜬거울), 새모양토기(鳥形土器, 삼국시대, 함평 마산리 표산유적∙나주 랑동유적∙아산 명암리 밖지므레유적), 긴목항아리(長頸壺, 초기철기시대, 나주 운곡동유적∙광주수문유적), 나주 복암리 3호분(삼국시대, 세잎무늬고리자루칼∙목걸이), 새발무늬항아리(鳥足文壺, 삼국시대, 나주 덕산리 4호분), 나주 신촌리 9호분 을관(삼국시대, 창∙고리자루칼∙쇠화살촉), 금동신발(金銅飾履, 삼국시대, 나주 신촌리 9호분 을관), 나주 신촌리 9호분(삼국시대, 항아리∙두귀단지), 나주 신촌리 9호분(삼국시대, 뚜껑접시∙뚜껑단지∙단지∙구슬∙꾸미개∙팔찌), 쇠화살촉(鐵鏃, 삼국시대, 나주 덕산리 4호분), 원통모양토기(圓筒形土器, 삼국시대, 나주 복암리 2호분∙나주 신촌리9호분) -

  대안리(大安里) 일대에는 12기가 분포하는데 제9호분은 대안리 고분군 중 최대 규모이며 9기의 옹관과 함께 금반지, 큰칼, 구리팔찌, 유리구슬, 토기 등 유물이 출토되었다.

  - 나주 신촌리 금동관(羅州 新村里 金銅冠, 국보 제295호), 정촌고분 금동신발(丁村古墳 金銅飾履) -

  신촌리(新村里) 일대에는 9기가 분포하는데 일제강점기에 9호분 등 고분 일부가 발굴되었으며 이때 나주 신촌리 금동관(羅州 新村里 金銅冠, 국보 제295호)을 비롯한 정촌고분 금동신발(丁村古墳 金銅飾履), 금반지(金半指), 봉황문 고리자루칼(換頭大刀), 구리팔찌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1999년 신촌리 9호분을 재발굴 조사한 결과, 고분 정상부를 두르며 장식한 원통형 토기 32개가 출토되었다. 원통형 토기는 일본의 고분에서 출토된 ‘하니와’라는 유물과 같은 성격으로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 교류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덕산리(德山里) 일대에는 14기 이상이 분포하고 있으며 중심 축조연대는 신촌리(新村里), 대안리(大安里)와 유사한 5세기 중엽~후반 경으로 판단된다. 반남 고분군(潘南 古墳群)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10호분은 석실분으로 6세기 중엽 이후 백제 세력이 진출하면서 토착세력의 옹관묘가 소멸되는 과정에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전남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 103 등

* donga.com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27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