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감 측우대(觀象監 測雨臺, 보물 제843호)는 조선시대 측우기를 올려놓고 강우량降雨量을 측정하던 것으로 지금은 받침돌臺石만 남아 있다. 이 측우대는 조선시대 천문天∙지리地理∙역수曆數 등을 맡아 본 관청官廳인 관상감觀象監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측우기測雨器는 세종 23년(1441) 세계 최초로 발명되어 이듬해 전국적으로 강우량 측정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그 전에 땅 속에 스며든 비의 양은 잴 수 없던 비합리적 방법에서 벗어난 15세기의 획기적 발명품이었다. 청동으로 만든 원통형의 측우기를 돌 위에 올려놓고 사용했는데 높이 87.6㎝, 세로 59.7㎝, 가로 94.5㎝의 직육면체의 화강암으로, 가운데에 직경 16.5㎝, 깊이 4.7㎝로 구멍을 뚫어 세웠다.
측우기는 전쟁 등으로 비록 유실되어 사라졌지만 이 대석은 측우기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이 측우기는 측우대의 구멍에 맞추어 복원한 것이다. 세종 때의 것으로 서울매동초등학교 교정에 있던 것을 지금은 기상청(氣象廳 http://www.kma.go.kr/index.jsp)에 옮겨 놓았다.
금영 측우기(錦營 測雨器, 보물 제561호)는 빗물을 그릇에 받아 강우량을 재는 측우기는 조선 세종 23년(1441)에 만들어진 후 여러 차례 다시 만들어졌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청동으로 제작된 표면에 “도광정유제道光丁酉製”라는 새겨진 글귀를 통해 헌종 3년(1837)에 만들어진 측우기가 유일하다.
측우기測雨器는 높이 32㎝, 바깥지름 15㎝, 안지름 14㎝, 깊이 10.8㎝, 무게 6.2㎏ 원통형圓筒形의 표면 3곳에 대나무처럼 도드라진 마디가 눈에 띤다. 이 측우기는 상·중·하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길이는 10.6㎝, 10.5㎝, 10.3㎝이며 세 단을 분해할 수 있고, 사용할 때에는 꼭 맞게 조정하여 쓰게 되어 있다. 동그란 통은 빗물을 받는 그릇으로 여기에 주척主尺이라 부르는 자가 있어 측우기에 고인 빗물의 깊이를 쟀다. 중앙의 두 마디 사이에는 6줄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원래 공주公州 감영監營 앞뜰에 있었으나, 뒤에 일본 기상청으로 반출되었다가 1971년 3월 우리나라에 다시 반환된 문화재이다. 국립공주박물관에는 이 측우기를 받쳤던 것으로 전해지는 정사각형의 받침돌이 남아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특별시 동작구 여의대방로16길 61 (신대방동, 기상청)
* donga.com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27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