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도갑사 해탈문(靈巖 道岬寺 解脫門, 국보 제50호)은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이 문을 지나면 속세(俗世)의 모든 번뇌를 벗어나 심없는 부처님의 품안인 정토세계(淨土世界)로 들어가는 문이다.
도갑사는 월출산에 있는 절로,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인데, 도선이 자라 중국을 다녀온 뒤 신라 말에 문수사터(文殊寺地)에 도갑사를 지었다고, 고려 후기에 크게 번성했다고 전한다. 그 뒤, 수미·신미(守眉·信眉) 두 스님이 조선 성종 4년(1473)에 다시 지었고,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 버린 것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탈문(解脫門)은 정면 3칸(8.7m), 측면 2칸(5.3m), 높이 6.9m 크기이며, 절의 입구에 서 있다. 좌우 1칸에는 절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서 있고,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위쪽에는 도갑사의 정문임을 알리는 ‘월출산도갑사(月出山道岬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반대편에는 ‘해탈문(解脫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주심포계 맞배집이다. 2중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약간의 배흘림이 있는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栱包)는 헛첨차가 사용된 주심포(柱心包: 기둥 위에만 공포를 짜 올리는 양식) 형식으로 바깥에 출목(出目)이 있다. 가구(架構) 구조는 5량 형식이다. 전면과 배면의 공포 위에 대들보를 걸고 대들보 위에는 포대공(包臺工)을 짜서 종보를 걸었다. 포대공에는 우미량(牛尾樑)이 결구되어 주심도리를 받치고 있다. 종보의 양 끝에는 중도리를 올렸으며 중앙에는 접시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쳤다. 종도리와 종보 상부에는 인(人)자형 소슬합장을 결구하여 종도리를 보강하고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천장은 반자를 설치하지 않고 개방한 연등천장이다.
영암 도갑사 해탈문은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산문(山門)건축으로, 춘천 청평사 회전문(春川 淸平寺 廻轉門, 보물 제164호)과 비교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영암 도갑사 목조문수·보현동자상(靈巖 道岬寺 木造文殊·普賢童子像, 보물 제1134호)은 신라 말 도선이 창건한 영암 도갑사 해탈문(靈巖 道岬寺 解脫門, 국보 제50호)의 좌우칸에 모셔져 있다.
동자상(童子像)은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총 높이가 약 1.8m가량이고, 앉은 높이가 1.1m 안팎으로 크기도 비슷하고 조각기법도 동일하다. 다리를 앞쪽으로 나란히 모아서 사자, 코끼리 등에 걸터앉은 두 동자상은 동물상과 따로 만들어 결합하였으며, 두 손도 따로 만들어 끼웠다. 현재의 손도 후대에 다시 만들어 끼운 것으로 생각된다. 두 동자상의 머리를 묶은 모양새는 매우 화려하며, 이목구비가 원만하여 동자의 천진스런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점에서 지혜(智慧)의 상징인 문수보살(文殊菩薩)과 실천(實踐)의 상징인 보현보살(普賢菩薩)의 화신(化身)으로 추정되며 사자와 코끼리를 탄 동자상이라는 드문 예 가운데 목조상으로서는 유일한 작품이다.
1960년 해탈문(解脫門)을 해체 복원할 때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1473년에 건립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이곳에 모신 동자상도 문이 건립될 때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로 306, 도갑사 (도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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