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는 발굴된 것이 아닌 때문에 비록 어느 유적에서 출토된 것인지 구체적인 정황은 알 수 없지만 형태상 기원전 4세기 전 대전 괴정동(傳 大田 槐亭洞), 아산 남성리 유적에서 출토된 방패형 청동기와 유사하다. 앞면에 솟대를, 뒷면에는 농경의례(農耕儀禮)를 표현한 청동의기(靑銅儀器)로서 생산과 풍요를 비는 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는 길이 7.3cm, 폭이 12.8cm로 아랫부분은 결실되어 남아있지 않다. 몸체 가장 윗부분에는 작은 네모난 구멍 여섯 개가 배치되어 있는데 구멍이 조금씩 닳아있어 끈을 매달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양쪽 면에는 정 가운데 세로 방향과 가장자리 윤곽을 따라 빗금, 선, 점선을 이용한 무늬 띠가 돌아가고 그 안쪽 빈 공간에 그림이 새겨져 있다. 한쪽 면 오른쪽에는 머리 위에 긴 깃털 같은 것을 꽂고 성기(性器)가 노출된 벌거벗은 채 따비로 밭을 일구는 남자와 괭이를 치켜든 인물이 있고 왼쪽에는 항아리에 무언가를 담고 있는 인물이 묘사되어 있다. 봄에 밭을 갈고 흙덩이를 부수는 장면과 가을에 수확한 곡물을 항아리에 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른 쪽 면에는 오른쪽과 왼쪽 새가 나뭇가지 위에 앉은 모습은 농촌 마을의 솟대를 연상 시키는 모두 두 갈래로 갈라진 나무 끝에 새가 한 마리씩 앉아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새끼모양의 둥근 고리가 끼워져 있는 꼭지(鈕)가 한 개 달려있다.
새(鳥)는 예로부터 곡식을 물어다 주어 마을의 안녕(安寧)과 풍요(豊饒)를 가져오고 하늘의 신과 땅의 주술자(呪術者)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자(媒介者)로 인식되는 민간신앙(民間信仰) 가운데 하나인 솟대와도 연관성을 보인다. 따라서 선사, 고대의 무덤이나 제사유적에서는 새 모양을 본 딴 토기나 새가 새겨진 청동기 등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자료출처: 국립중앙박물관)
* 문화재 주소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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