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고려 문신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들풀/이영일 2016. 2. 25. 05:48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은 고려후기(高麗後期) 최씨무신정권기(崔氏武臣政權期)의 대표적 문신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53권 13책 시문집이다. 그의 문학성이 돋보이는 시뿐만 아니라 당대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은 글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규보의 문학적 감수성이나 세계인식이 담긴 샘 속의 달을 노래한 시 ‘영정중월(詠井中月)’ -「산승이 달빛을 탐하여 山僧貪月光 / 병 속에 물과 함께 길어 담았네 甁汲一壺中/ 절에 다다르면 바야흐로 깨달으리라 到寺方應覺/ 병 기울이면 달빛 또한 텅 비는 것을 甁傾月亦空」- 시는 어렵지 않은 글자만 가지고도 정확히 운을 맞추고,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불교 논리를 완벽하게 소화하여 시화한 작품이다. 달빛을 사랑하는 스님이라면 벌써 그것으로 공(空)의 생애를 충분히 실천한 분이련만, 그조차 욕심이요, 병 속의 가득찬 물을 쏟아내면 달빛 또한 사라지니, 완벽한 공(空)의 세계를 향한 치열한 싸움이 아닐 수 없다.

  대표적인 시「동명왕편(東明王篇)」은 장편의 민족서사시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 작품이다. 해모수와 유화가 만나는 과정으로부터 주몽의 탄생에 얽힌 신비스러운 이야기와 시련을 이기고 고구려를 건설하기까지의 모습과 왕자 유리의 왕위계승, 그리고 왕위에 오르는 임금들이 너그럽고 어진 마음과 예의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희망하는 말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서문을 통하여『구삼국사(舊三國史)』라는 우리나라 사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고, 시 속의 많은 분주(分註)에서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

 「노무편(老巫篇)」은 민중을 미혹시키는 무당을 경계하는 뜻에서 지은 시로서 무당의 의식을 서술하였기 때문에 무속연구의 자료로서 가치가 있으며,「개원천보영사시(開元天寶詠史詩)」는 안녹산의 난으로 사직을 거의 망칠뻔했던 당나라 현종의 유적 등을 읊은 것이다.

 「답전이지논문서(答全履之論文書)」에는 옛 시인을 모방, 답습하지 말고 새롭게 표현할 것을 역설한 시론(詩論)이 보이고,「논시중미지약언(論詩中微旨略言)」에는 주의론(主意論)을 비롯한 시에 대한 그의 많은 견해가 피력되어 있다. 작문과정에서 시인이 주의해야 할 것을 강조하기 위한 그의 구불의체론(九不儀體論)이 특히 돋보인다.「당서불립최치원열전의(唐書不立崔致遠列傳義)」에서는 최치원의 전기를 책에 수록하지 않은 당나라 사람들의 편협성을 개탄하고 있어,「동명왕편(東明王篇)」에서 보인 바와 같이 그의 민족에 대한 긍지와 주체사상의 일면이 보인다.

 「국선생전(麴先生傳)」과「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은 가전체문학으로,「국선생전(麴先生傳)」은 술을 의인화하여 술과 인간과의 미묘한 관계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엮은 작품이고,「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은 거북을 의인화하여 작아서 알기 어려운 것을 미리 살펴 방비하는 데에는 성인도 간혹 실수가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하며 매사에 삼갈 것을 말하고 있다. 이들 가전체문학작품은 우리나라 소설이 형성되는 과정으로 볼 때, 설화와 소설을 잇는 교량적 구실을 담당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백거사전(白雲居士專)」은 이규보가 젊었을 때에 천마산에 은거하면서 도연명의「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본떠 시와 술을 벗하여 안빈낙도하며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을 그린 자서전적 전기이다.「칠현설(七賢說)」은 무신의 집권으로 속세를 등지고 스스로 맑고 고고함을 자랑하던 강좌칠현(江左七賢)을 조롱하는 내용으로 된 것이다. 끝내 죽림에의 유혹을 부리치고 시 한수에 벼슬 하나를 얻는 문재(文才)로, 나이 칠십으로 벼슬에서 물러날 때까지 벼슬길을 헤쳐나간 그의 인생관을 엿보게 해주는 글이다.

  이 책은 이규보의 뛰어난 시와 문 등의 문학작품이 수록된 귀중한 문헌일 뿐만 아니라 사료로서도 귀한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즉「대장경각기고문(大藏經刻祈告文)」을 통해『팔만대장경』판각의 연혁을 알게 되고,「신인상정예문발미(新印詳定禮文跋尾)」에 의해 금속활자의 사용에 관한 사실을 알게 된 것 등이 그것이다. (자료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국어국문학자료사전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주소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 donga.com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29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