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堤川 勿台里 石造如來立像, 보물 제546호)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청풍면 읍리에서 현재의 청풍문화재단지로 옮겨진 이 불상은 전체적인 조각양식을 볼 때 고려시대(高麗時代) 10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보인다.
여래(如來, Tathagata)는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내면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본질인 불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즉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진여(眞如)와 같은 의미이다. 모든 중생은 그러한 여래를 자신 안에 품고 있기 때문에 깨달음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원시불교시대에는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윤회(輪廻)에서 해탈(解脫)한 진인(眞人)에 대하여 제3인칭으로 사용하였을 뿐, 제1인칭으로서 자신을 호칭할 때 여래라고 한 경우는 없었다. 불(佛)이라는 말도 당시 사람에게는 희귀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여래(如來)라는 말은 더욱 이상인(理想人)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후세에 여래와 불이 구별 없이 사용되어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약사불(藥師佛)을 약사여래(藥師如來)라 한다.
여래입상(如來立像)은 높이가 341cm이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肉髻)가 매우 작아서 우뚝해 보이며 사각형의 얼굴은 후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가늘면서도 두툼한 눈, 넓적한 코, 뚜렷한 코와 입술사이의 우묵한 인중은 자비로운 부처의 풍모를 잘 나타내고 있다. 두 귀는 양 어깨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고 목에는 3개의 주름(三道)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通兩) 있는데 옷주름이 두껍게 처리되어 신체의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허리에는 치마를 묶은 띠매듭이 표현되어 있으며, 그 아래로는 U자형의 주름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손은 오른손을 들어서 손가락을 구부렸고, 왼손은 늘어뜨려 손가락을 펴서 밖으로 내보이고 있다. 불상으로부터 3m쯤 떨어진 곳에 방치되어 있는 원래의 대좌는 8각의 연화좌로 각 면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다.
이 석불입상(石佛立像)은 당당한 어깨, 양감이 있는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의 힘을 느끼게 하고 있지만, 목의 형식화된 주름이라든지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과 개체화된 신체 등을 볼 때 고려시대의 작품이 확실하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채널)
* 문화재 주소지: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청풍문화재단지(물태리 산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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