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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 미학의 절정, 경복궁 경회루(景福宮 慶會樓)

들풀/이영일 2016. 11. 3. 11:25

  경복궁 경회루(景福宮 慶會樓, 국보 제224호)는 경복궁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세운 경회루는, 나라에 규모가 큰 경사가 있을 때에 왕이 신하들과 연회를 주재 하거나 외국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연못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과 궁궐의 장엄한 경관을 감상하는 왕실 정원으로 꾸몄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의 경회루는 작은 규모였으나, 조선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넓히면서 크게 다시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은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270여 년이 지난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경회루는 앞면 7칸·옆면 5칸의 2층에 넓이 931㎡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누각건물에서 많이 보이는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태종 때 처음 지어진 경회루는 성종 때 고쳐지으면서 누각의 돌기둥을 화려하게 용의 문양을 조각하였다고 전해지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이후 고종 대에 다시 지으면서 지금과 같이 간결하게 바깥쪽에는 네모난 기둥을, 안쪽에는 둥근기둥을 세웠다. 1층 바닥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고 48개의 높은 돌기둥만 세우고 비웠으며, 2층 바닥은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의 높이를 3단으로 중앙의 3칸 중궁(中宮) 부분이 가장 높고, 그 다음 12칸은 한 뼘 정도 낮고, 바깥쪽 20칸은 다시 한 뼘쯤 더 낮은데, 중앙으로 갈수록 높은 품계의 관료들이 각각 달리하여 지위에 따라 맞는 자리에 앉도록 하였다.

  경회루는 주역(周易)의 원리에 기초하여 지었다는 옛 기록이 있다. 이에 따르면 중앙의 3칸은 천지인(天地人)을, 12칸은 1년 열두 달을, 20칸 바깥에 있는 24개의 기둥은 24절기를 의미한다. 높낮이 경계 부분에는 들어열개(위쪽으로 들어 여는 문) 창호가 달려 있어 창호를 내리면 각각 닫힌 방이 된다. 추녀마루에는 우리나라 건물 가운데 가장 많은 11개의 잡상(雜像, 지붕 위 네 귀에 여러 가지 神像을 새겨 넣은 장식 기와)이 있다. <경회루전도慶會樓全圖>에 의하면 재건 당시에 청동으로 만든 두 마리 용[靑銅龍]을 연못에 넣어 물과 불을 다스리게 했다 하며, 1997년 준설공사 과정에서 경회루 북쪽 하향정 앞 연못 바닥에서 출토하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경복궁 경회루는 우리나라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으로, 간결하면서도 호화롭게 장식한 조선 후기 누각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건축 문화재이다.

· 하향정(荷香亭) - 경회루 서북쪽 호수의 가장자리에 13.8㎡(4.2평) 규모의 육각형정자가 있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1959년 자신의 취미생활인 낚시와 휴식을 즐기기 위하여 지은 정자란다. 인터넷 검색창에 검색하면 프란체스카 여사와 낚시를 즐기는 모습의 사진이 남아 있다. 철거와 이전, 현지에 그대로 보존하자는 의견으로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현 위치에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 경회루에 몰래 들어갔다 출세한 사연 - 일제강점기 때 헐리기 전 경회루 연못 둘레에는 사방을 둘러싼 담장과 동·서·남문이 있었었으며 궁인들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세종 때 교서관에 근무하던 구종직이란 자가 숙직을 서던 어느 밤 경회루에 몰래 숨어 들어가 풍치를 즐기다가 왕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가 경회루를 구경하고 싶어 미관말직의 몸으로 죄를 저질렀다고 하자, 세종은 풍류를 아는 자라 여겨 노래를 불러 보라 하였다. <춘추春秋>까지 외우게 한 왕은 다음날 구종직을 불러 정9품이던 그에게 종5품을 하사하였다.

· 흥청망청(興淸亡淸)의 기원 - 흥에 겨워 즐기거나 돈을 마구 쓰는 모양새를 일컫는 ‘흥청망청’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부분 연산군의 경회루와 관련이 있다. 연산군은 조선의 아름다운 여성을 선발해 ‘운평運平’이라는 기생으로 만들었는데, 이들 중 궁궐로 뽑혀 온 기생을 ‘흥청興淸’이라 하였다. 연산군은 경회루 등에서 흥청들과 함께 유흥을 즐겼고, 결국 ‘맑음을 일으키는’ 흥청은 ‘맑음을 망하게’ 하는 망청亡廳이 되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채널)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37, 경복궁 (세종로)


* donga.com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33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