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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국정이 행해지던 경복궁 사정전(景福宮 思政殿)

들풀/이영일 2016. 11. 13. 18:44

  경복궁(景福宮, 사적 제117호)은 고대부터 전해져 내려 온 궁궐건축의 제도인 전조후침 (前朝後寢)및 삼문삼조(三門三朝)의 기본배치 원리에 따라 각기 제 기능에 따른 전각이 배치되었다.

  삼문은 고문(皐門), 치문(治門), 노문(路門)이고 삼조는 외조(外朝), 치조(治朝), 연조(燕朝)이다. 외조는 신하들이 집무하는 공간으로 흥례문에서 근정문까지, 치조는 정전(正殿)과 임금이 일상생활을 하던 편전(便殿)을 포함한 공간으로 근정문에서 향오문(嚮五門)까지, 연조는 임금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의 침전(寢殿)과 생활공간으로 향오문 뒤의 임금의 침소인 강녕전(康寧殿)과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交泰殿) 그리고 대비의 생활공간인 자경전(慈慶殿) 일원이다. 따라서 고문은 외조의 정문으로 흥례문이고 치문은 치조의 정문인 근정문이며 노문은 연조의 정문으로 향오문인 것이다. 치조구역에는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이 있고, 그 뒤로 왕이 평상시 거처화며 정사를 보살피던 근정전의 뒷편 사정문을 지나면 정면에 위치한 사정전(思政殿)과 동측에 만춘전(萬春殿) 서측에 천추전(千秋殿)이 자리 잡고 있다.

   사정전(思政殿. 보물 제1759호)은 만춘전, 천추전과 더불어 편전으로서 매일 아침 업무보고와 회의,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정사를 보았던 곳이다. 사정전에는 온돌이 없고 만춘전과 천추전에는 온돌이 있어 추운 겨울에는 만춘전과 천추전에서 정사를 보고 경연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정전의 정문은 근정전과 통하는 사정문인데 그 좌우에는 서쪽부터 천자문의 글자 순서를 따라 천자고~월자고까지 행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궁중의 물건을 보관하는 내탕고(內帑庫) 역할을 하였다.

   사정전은 경복궁 창건 당시인 태조 4년(1395)에 지어졌으며, 명종 8년(1553)에 불탄 뒤 재건했다. 그 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인해 경복궁의 수많은 전각과 궁문이 모두 소실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고종 4년(1867)에 근정전, 경회루, 수정전 등과 함께 중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시정 5주년 기념으로 개최된 조선물산공진회 당시 사정전은 박애관, 만춘전은 경비실, 천추전은 심사실 등으로 개조되어 사용되었으며, 그 후 6.25전쟁으로 만춘전이 파괴되었다가 1988년 다시 복원되었다. ‘사정’은 ‘선정을 생각하다‘라는 뜻으로 정도전이 작명하였으며,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이를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를 잃게 되는 것이므로 왕으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여 정치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사정전의 현판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이조판서로 있던 조석우가 썼다.

   사정전의 규모로 평면은 정면5칸, 측면3칸으로 어칸을 협칸보다 2배 가까운 길이로 넓게 잡았고, 측면에서도 중앙칸을 훨씬 크게 한 것이 특징이다. 기단은 장대석 3벌대 기단이고, 어칸에 소맷돌이 있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초석은 원형초석이다. 가구는 2고주 7량가의 다포식이며, 단면이 굵은 창방 뺄목은 운궁처리로 하여 평방을 받고 있다. 평주에서도 퇴보의 뺄목을 안초공으로 연결하여 창방과 평방을 감싸게 되어서 화려한 감각을 주게 된다. 공포는 4면 모두 어칸에만 2개의 간포를 배설하고, 협칸, 퇴칸은 1개를 설치하였다. 쇠서는 앙서로 처리하였고, 내부의 포작은 모두 화려하게 새겼다. 천정은 우물천정에 단청문양이 화려하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용마루와 내림마루에는 양성을 하고 취두·용두·잡상을 배열했다. 창호는 4면 모두 띠살창 4분합문으로 하고, 그 위에 교창을 설치하였다. 바닥은 우물마루에 내부칸막이 시설 없이 하나의 공간이지만 중앙에 어좌를 설치하기 위한 2개 고주를 세워 상부에 벽화가 있는 벽체가 구성되어 있다.

   사정전은 왕이 평소에 거처하며 정무를 수행하는 편전으로 정전인 근정전과 함께 치조의 중요한 건물이다. 고종 4년(1867)에 중건한 당시의 외관이 잘 남아있고, 편전의 위엄을 지닌 공포짜임을 비롯한 구조양식 전반과 기능 충족을 위한 공간구성 등의 면모를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건축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만춘전(萬春殿)은 사정전의 부속 건물로 임금이 나랏일을 의논하거나, 연회를 베풀던 편전 가운데 하나로 사정전 동쪽에 위치하여 춘(春)은 봄을 의미한다. 크기와 모양은 천추전과 같은 정면6간, 측면4간의 24칸 건물로 앞면 중앙 2칸은 퇴량을 얹었고 뒷면은 마루로 되었으며 마루칸을 중심으로 동과 서에는 온돌방을 둔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한국정쟁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1988년에 복원했다.

   천추전(千秋殿)은 사정전 서쪽에 위치한 건물로 왕과 신하가 학문을 토론하던 곳으로, 추(秋)는 가을을 의미하며 온돌이 설치되어 주로 가을과 겨울에 이용했다고 한다. 동쪽에 나란히 지어진 만춘전과 좌우대칭을 이룬다. 문종은 세자 시절부터 과중한 일과 업무에 시달리다 이곳에서 승하 하셨다고 한다.

* 사정전 일화: 세종대왕은 사정전에서 매일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에 ‘상참(常參)이라는 어전회의가 열렸다. 세종은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상참에 참석 했다고 한다. 어 느 날 우의정 류관이 “주상께서 매일 회의를 참석하시느라 피곤하실 터이니 하루걸러 참석하시는 것이 어떠하온지요?”라고 여쭈었더니 세종은 “우의정께서 매일 입궐하기 힘드신가 본데 앞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기 위해 오시려거든 미리 다른 사람을 시켜서 알리도록 하오’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연산군 대에 상참과 경연이 잠시 폐지되기도 하였다.

   경복궁은 유교적 질서와 풍수적 건축 사상을 융합한 건축물이다. 궁 안의 주요 전각과 문들은 남북 직선 축에 맞추어 배치되었으며 각각의 공간을 행각이 감싸도록 했다. 또한 주요 정전과 침전 등을 남향으로 하여 좌우대칭으로 배치했고, 전조후침하여 정사를 보는 조정은 앞에 두고 일상생활을 하는 침전은 뒤에 두어 내전, 외전 영역을 나누었다.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法宮)이자 궁궐 건축의 모범으로 원칙과 절차를 엄수해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사직로 161번지 (경복궁)


* donga.com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14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