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忠州 淨土寺址 弘法國師塔, 국보 제102호)은 고려(高麗) 목종 때의 승려인 홍법국사의 실상탑(實相塔)으로, 충청북도 중원군(현 충주시)의 정토사 옛터에 있던 것을 1915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석조물정원에 복원 조립되어 홍법국사탑비(弘法國師塔碑, 보물 제359호)와 한 세트로 전시되어 있다.
홍법국사탑(弘法國師塔)의 기단(基壇)은 네모난 바닥돌을 깐 후에 8각의 아래받침돌을 놓고, 그 위로 엎어놓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높직한 괴임을 두어 가운데받침돌을 올린 후 다시 윗받침돌을 얹어 놓은 모습이다. 가운데받침돌에는 구름을 타고 있는 용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고, 윗받침돌에는 아래와 대칭되는 솟은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탑신(塔身)의 몸돌로, 둥근 공모양을 하고 있다. 몸돌에는 공을 가로·세로로 묶은 듯한 십(十)자형의 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며, 그 교차점에는 꽃무늬를 두어 장식하고 있다. 지붕돌은 별다른 장식은 없으나 여덟 곳의 모서리마다 꽃조각을 둔 것이 눈에 띄는데, 아쉽게도 대부분이 없어져 버렸다. 삿갓 모양으로 깊숙이 패인 지붕돌 밑면에는 비천상(飛天像)이 조각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성에서는 8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신라의 탑형식을 잃지 않으면서 일부분에서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작품으로, 제작연대는 고려 현종 8년(1017)이다. 공모양의 몸돌로 인해 ‘알독’이라고 불려지기도 한 이 탑은 새로운 기법을 보여주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탑으로, 섬세한 조각과 단조로운 무늬가 잘 조화되어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忠州 淨土寺址 弘法國師塔碑, 보물 제359호)는 원래 정토사터에 남아있던 것을 1915년에 홍법국사 실상탑(弘法國師 實相塔, 국보 제102호)과 함께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석조물정원에 복원 조립되어 홍법국사탑(弘法國師塔, 국보 제102호)과 한 세트로 전시되어 있다.
정토사는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개천산에 있었던 절로,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를 세운 태조로부터 국사의 예우를 받았던 법경대사 현휘(法鏡大師 玄暉)가 주지스님으로 있다가, 그의 뒤를 이어 홍법국사가 제자들을 지도하였던 대사찰이다.
홍법국사(弘法國師)는 통일신라 신덕왕대에 태어나 12살의 나이에 출가하였고,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에 활약하였던 승려로서 당나라에서 수행하고 돌아와 선(禪)을 유행시켰으며, 고려 성종 때 대선사(大禪師)를 거쳐 목종 때 국사(國師)의 칭호를 받았다.
탑비(塔碑)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碑身]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비(碑)의 앞면에는 이수 앞면 가운데에 ‘實相之塔’이라는 해서체(楷書體)의 제액(題額)이 있고, 비신 상단부에는 ‘開天山淨土寺故國師弘法大禪師之碑’라는 전액(篆額)이 있다. 비문 앞면에는 행적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문도들의 직명이 적혀 있는데, 편마암의 비 표면이 마멸되어 판독이 어렵다. 2㎝ 정도의 구양순체(歐陽詢體)의 해서(楷書)로 글의 짜임새가 잘 정리되어 있다.
홍법국사(弘法國師)가 정토사(淨土寺)에 머물다 입적하자, 고려(高麗) 목종은 ‘자등(慈燈)’이라는 탑명(塔銘)을 내려 손몽주(孫夢周)에게 비의 글을 짓도록 하여서 현종 8년(1017)에 건립되었다. 탑비(塔碑)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용의 머리로 바뀌어있는데,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에 나타나는 양식적 특징이다. 용의 표현은 다른 탑비의 받침돌에 비하여 구체적이고 힘차다. 또한 머릿돌에도 용틀임 조각을 하였는데 그 수법이 주목할 만하다. (참고자료: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 donga.com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35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