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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의 전설을 담은 땅, 김포 덕포진(金浦 德浦鎭, 사적 제292호)

들풀/이영일 2017. 2. 22. 14:35

   김포 덕포진(金浦 德浦鎭, 사적 제292호)은 조선시대 진영으로, 이곳은 서울로 통하는 바닷길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대였던 곳이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현종 7년(1666)에 강화에 포함되었다.

- 덕포진 가포대 후면과 전면 강화도 방향 -

   김포 덕포진은 높직한 평지에 세운 포대(砲臺)인 돈대(墩臺)와 대포를 쏘는 포대, 그리고 포를 쏠 때 필요한 불씨를 보관하고 포병을 지휘하는 파수청(把守廳)이 있다. 돈대는 중요한 전략지에 있어 병인양요(丙寅洋擾) 때는 프랑스함대와 신미양요(辛未洋擾) 때는 미국 함대와 싸웠다.

- 덕포진 가포대(1호내부) · 덕포진 파수청터(把守廳趾) -

   강화해협(江華海峽)은 한강과 연결되는 조선시대 외세침입의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촘촘하게 늘어선 진(鎭), 보(堡), 돈대(墩臺)는 김포와 강화 해안선을 따라 위치한다. 조선시대 군사 방어시설의 제 모습을 관찰하고 싶다면 덕포진이 있다. 강화해협 중에서도 가장 좁은 폭을 사이에 두고 김포의 용두돈대(龍頭墩臺)와 마주하는 이곳은 진지를 따라 이어지는 1.5㎞의 산책로가 마치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강화해협의 돌아나가듯 굽이도는 물살은 ‘손돌목’이라 불린다. 원나라의 공격으로 강화도로 임시 수도를 정한 고려의 국왕 고종이 손돌이라는 뱃사공의 나룻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려 하다 거꾸로 흘러가는 배의 방향을 보고 적의 첩자로 오인하여 그를 참수하였다. 손돌은 마지막 순간 흐르는 물살에 바가지를 띄워 이것을 따라가라 유언하였고 흐르는 물살을 따라 거꾸로 향하던 바가지는 강화도의 해안으로 안전하게 나룻배를 인도하였다. 손돌의 억울한 죽음은 덕포진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작은 비석으로 전해진다. 지금까지도 손돌의 생일인 음력 10월 20일 무렵 불어오는 매서운 강화해협의 바람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손돌의 영혼이 실린 ‘손돌바람’이라 불린다. 덕포진의 호젓한 산책은 인근 대명항과 포구를 함께하기에 좋다. 서해 바다의 먹거리로 가득한 포구는 못생긴 고기로 유명한 ‘삼식이’ 회 맛을 보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휘소(指揮所)였던 파수장터(把守廳趾)를 중심으로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어 당시의 상황을 후세에 알려주고 있다. 1980년에 행한 발굴조사 결과 7개의 포탄과 2개의 상평통보 등이 출토되었고 주춧돌과 화덕자리를 발견하였다. 당시 (참고문헌: 문화재청·네이버 지식백과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기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산103-1번지

  

* donga.com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35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