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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경내의 천년고찰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

들풀/이영일 2017. 9. 25. 03:17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국립서울현충원 경내에 위치한 전통사찰 제92호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원래 통일 신라 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칡덩굴이 엉켜있고 약수가 나는 명당에 창건한 갈궁사(葛弓寺)가 시초이다. 그 후 고려 공민왕 때 보인대사(寶印大師)가 중창하고 화장암(華藏庵)으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선조가 1577년(선조 10) 생조모인 창빈안씨(昌嬪安氏)의 묘를 절 부근에 모시고 그 원찰(願刹)로 삼고 화장사(華藏寺)로 고쳐 불렀으며, 창빈묘의 조포사찰(造泡寺刹)로 지정하였다는 것이다. 이후의 연혁은『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 자세히 전한다. 화장사는 1663년(현종 4)에 중수를 하는 등 꾸준히 사세를 유지해왔는데, 영조 때 신경준이 지은『가람고(伽藍攷)』에도 “동작리에 화장암이 있다(在銅雀里縣北十五里)”고 기록하고 있다. 그 뒤 1862년(철종 13)에는 운담(雲潭)과 경해(鏡海) 두 스님이 중건하였다. 1870년(고종 7)에는 운담(雲潭)과 경해(鏡海) 두 스님이 경파루(鏡波樓)를 새로 지었으며, 1878년(고종 15)에는 주지 서월(瑞月) 스님과 경해 스님이 큰방 등을 수리하였다. 1893년(고종 30)에는 화주 경운(慶雲)·계향(戒香) 스님이 불상을 개금·개분하고 구품탱·지장탱·현왕탱·독성탱·산신탱을 봉안하였고, 1896년에는 칠성각을 새로 지었다. 그리고 1906년에는 화주 풍곡(豊谷) 스님이 약사전의 불상을 개금·단청하고 후불탱·신중탱·감로탱·신중탱·칠성탱 등을 봉안하였다.

  일제의 사찰령에 따라 1911년에는 봉은사의 말사로 편입이 되었다. 1920년에는 주지 원옹(圓翁)스님과 명진(明眞)스님이 큰방을 수리하였고, 1936년에는 주지 유영송(劉永松) 스님이 능인전(能仁殿)을 중수하였다.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의 유형문화재로는 철불좌상(鐵佛坐像), 괘불도(掛佛圖), 탱화(幁畵) 등 다수가 있다.

01. 지장사철불좌상(地藏寺鐵佛坐像,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5호)은 철로 만든 약사불로 전체 높이 98㎝, 폭 70㎝의 불상이다. 얼굴은 둥글면서도 수척한 모습이고, 상체는 비교적 당당하지만 양 어깨를 강조하여 움추린 모습이다. 왼쪽 어깨만 감싸고 있는 옷은 주름표현이 선명하고, 왼손에는 약그릇을 잡은 것처럼 표현하여 약사불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고려 초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철불좌상이며 당시에는 보기 드문 약사불로 신앙사 연구 등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지장사괘불도(地藏寺掛佛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3호)는 석가를 비롯한 삼존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린 그림으로, 가로 287.3㎝, 세로 456㎝ 의 크기이다. 상단에 그려진 삼존은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게 표현되어 형식화된 느낌이고, 하단에 그려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비교적 자유롭고 활달하게 묘사되어 위와 대조를 이룬다. 적색과 녹색, 청색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이 시기에 제작된 다른 불화들보다 색채가 밝아 눈길을 끈다. 이 그림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전형적인 괘불 유형이다.

02. 지장사아미타불도(地藏寺阿彌陀佛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4호)는 아미타불이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가로 223.5㎝, 세로 138㎝ 의 규모이다. 화면의 중심에 아미타불을 두고, 양 옆에 권속들을 배치하였는데, 형태가 풍만하고 정교하며 무늬가 화려하다. 5가지 색깔의 광배가 눈길을 끌며, 옷의 묘사가 도식화되어 있다. 적색과 녹색의 색상은 다소 탁하며, 코발트 빛깔의 짙은 청색은 19세기 말의 불화양식을 잘 보여준다. 1870년 화장사 대웅전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된 아미타불화로,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화면에 많은 인물들을 배치하면서도 정연한 배치로 인해 안정된 구성을 보여준다. 지장사극락구품도(地藏寺極樂九品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5호)는 관무량수경의 16관 중 제 14·15·16관에 해당되는 9품이 극락에 간 것을 묘사한 그림으로, 동화사 염불암의 극락구품도와 함께 동일한 원본을 보고 그린 것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가로 170.8㎝, 세로 166.3㎝의 규모이다. 얼굴의 이목구비를 섬약하게 표현하긴 하였으나, 조선 후기 극락구품도의 독특한 유형을 잘 보여주며, 음영의 표현이나 적색과 녹색의 대비, 화려한 꽃무늬 등은 19세기의 불화양식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03. 지장사감로도(地藏寺甘露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603.는『우란분경』이라는 불교의 경전을 그림으로 해석한 것이다. 가로 196.5㎝, 세로 150.3㎝의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화면을 3단으로 나누어 그렸다. 상부에는 극락의 아미타 일행이 지옥 중생을 맞이하러 오는 장면을 그리고, 중앙부에는 성반의식(우란분경에서 7월 15일 승려 및 십방제불에게 백미를 올리고 발원하는 의식)을 하는 모습과 주변의 아귀의 모습을, 하단부에는 고통에 신음하는 지옥과 현실의 모습을 그렸다. 일곱 여래의 장엄하면서도 원만한 얼굴과 옆을 바라보고 있는 자세, 성반의식을 하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과 산수의 표현 등은 19세기 초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나뭇잎 선의 처리와 산수의 음영처리 등에서 19세기 말의 불화양식이 나타난다. 지장사대웅전신중도(地藏寺大雄殿神衆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8호)는 인도의 재래적인 토속신인 신중을 그린 것이다. 비단 바탕에 적색과 녹색, 갈색을 주로 사용하여 채색하였으며, 크기는 가로 198㎝, 세로 149㎝ 이다. 화면에는 천룡과 범천, 제석 등을 중심으로 비교적 많은 권속들을 그려넣었는데, 좌우 대칭구도와 천룡과 제석 등이 이루는 역삼각형의 구도가 다소 복잡한 화면구성을 보이고 있다. 특히 천녀들이 20여 종에 달한는 각종의 악기를 연주하는 다양한 모습은 매우 뛰어나다. 인체를 불균형하게 표현한 점과 과장된 안면의 묘사 등이 19세기 불화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 작품으로, 비록 색깔이 바래기는 하였으나, 조화로운 색채 구성으로 그림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04. 지장사팔상도(地藏寺八相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0호)는 석가모니불의 생애를 묘사한 것이다. 가로 190.5㎝, 세로 147.5㎝ 의 크기로,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여덟 장면을 한 폭의 화면에 압축하여 그렸다. 화면을 8면으로 나누어 가장 극적인 장면만을 묘사하였는데, 각 장면에 흐르는 형식적인 형태와 탁한 색조는 19세기 말 당시의 불화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지장사약사불도(地藏寺藥師佛圖,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호)는 능인보전의 불상뒤에 걸려 있는 이 탱화는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으며, 크기는 가로 174.5㎝, 세로 111.5㎝이다. 소략한 존상의 형태와 음영법의 구사, 적색과 녹색의 탁한 색감이나 어두운 군청색을 남용한 점, 불화의 횡적인 구도와 그림에 나타난 상을 간략하게 나타낸 점 등 조선 후기 불화의 특징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지장사능인보전신중도(地藏寺能仁寶殿神衆圖,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4호)는 능인보전에 걸려 있는 신중도로, 제석·법천·천룡·금강신 등 대표적인 신을 모두 묘사하고 있다.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으며, 크기는 가로 153.2㎝, 세로 137㎝이다. 전체적으로 무리가 몰려 있는 모습이지만, 수평 3단의 정연한 구도를 보인다. 균형이 잡히지 않은 인체나 경직된 자세, 무겁고 탁한 색채 등은 전체적으로 불화의 격이 감소하던 20세기 초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종각·선실(禪室)·대방·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과 대방·요사채는 혜명(慧明)이 3년 만에 이룩한 건물이다. 이승만(李承晩)이 대통령시절 이 절에 들렀다가 “절이 없으면 내가 묻히고 싶은 땅”이라 한 곳이며, 설화로는 선조 때의 중신 이항복(李恒福)과 이덕형(李德馨)이 이절에서 과거공부를 하고 있을 때 변소의 측신(厠神)이 두 소년의 아랫도리를 움켜잡고 대감이라 불러서 장차 대감이 될 것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국립묘지가 들어서자 수많은 유가족들이 호국영령을 위해 기도하는 사찰이 되었다. 그 뒤 1983년에는 혜성(慧惺)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국립묘지에 안치된 호국영령들이 지장보살(地藏菩薩)의 원력(願力)으로 극락왕생(極樂往生)하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절 이름을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로 다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韓國寺刹全書(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글과 사진 이영일,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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