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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慶州 掘佛寺址 石造四面佛像, 보물 제121호)

들풀/이영일 2017. 10. 31. 02:31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慶州 掘佛寺址 石造四面佛像, 보물 제121호)은 경북의 북쪽 산인 소금강산(小金剛山) 기슭 동천동 산4번지의 굴불사터에 있는 불상으로 높이 약 3m의 커다란 바위의 서쪽에는 아미타삼존여래불(阿彌陀三尊如來佛), 동쪽에는 약사여래좌불(藥師如來座佛), 남쪽 면에는 삼존입상(三尊立像) 두 분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북쪽 면의 보살상 중 한 분은 얼굴이 열하나에 팔이 여섯 달린 관세음보살입상(觀世音菩薩立像)으로 우라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사방불(四方佛)형태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백률사(柏栗寺)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 기록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이때쯤 불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의 아미타여래는 신체만 돌기둥에 조각했고 머리는 따로 만들어 놓았는데 머리가 얼굴보다 크게 표현되어 꼭 모자를 쓴 것처럼 보인다. 신체는 당당하고 굴곡있게 표현되어 있으며 손과 발 또한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좌우에는 다른 돌로 보살입상을 세워 놓아서 3존불의 모습을 띠고 있다. 동쪽의 약사여래는 양 발을 무릎위로 올리고 앉아 있는데 몸 전체가 앞으로 숙여져 있다. 얼굴 표현은 매우 세련되었으며, 신체는 활기차고 긴장감이 넘쳐 보인다. 북쪽면의 오른쪽에는 도드라지게 새긴 보살입상이 서 있고, 왼쪽에는 6개의 손이 달려있는 관음보살을 얕은 선으로 새겼다. 오른쪽의 보살상은 둥글고 예쁜 얼굴, 굴곡있는 우아한 자세 등 그 표현이 매우 뛰어나다. 남쪽면은 원래 3존상으로 되어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오른쪽 보살을 완전히 떼어 가고 가운데 본존상의 머리마저 떼어갔다고 한다. 미래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불을 표현한 것인데, 굴곡이 진 신체의 모습과 얇은 옷주름의 묘사가 매우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1985년의 발굴 조사에서 고려시대의 건물터가 확인 되었다. 출토유물 가운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금고(金鼓)에는 굴석사(掘石寺)라는 명문이(銘文)이 있다.

  이처럼 입체의 표현, 음각과 양각의 표현, 좌상과 입상의 표현 등을 변화있게 배치한 점은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풍만하고 부드러우면서 생기를 잃지 않은 솜씨를 볼 때 통일신라 초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국보 제129호, 삼성리움미술관 소장)은 도드라진 선으로 표현되었는데, 그 기법이 매우 세련되고 아름답다. 통일신라시대의 불상들 가운데서 흔히 이런 양식의 보살상을 찾아볼 수 있는데, 비록 재료는 다르지만 성덕왕 18년(719)에 만들어진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제81호)이나 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제121호)과 비슷한 유형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맞고 몸의 형태도 유연한 편이지만 얼굴이나 신체의 표현에서 다소 경직된 느낌을 주는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글과 사진: 이영일/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 이태열, 울산광역시북구 향토문화연구소장, 이화찬 울산광역시북구 문화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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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