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안보 공동체의식을 함양하는 전쟁기념관 시외 조형물에 평화의 시계탑이 있다. 우리 민족의 간절한 통일열망과 평화기원을 두 소녀를 통해 상징화한 시계탑으로, 한 소녀가 안고 있는 시게는 현재의 시간을 나타내며, 또 한 소녀가 안고 있는 시계는 6·25전쟁 발발과 함께 멈춰버린 시간을 상징한다.
요즈음 한반도는 북핵을 둘러싸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이해 당사국들의 소용돌이에 있다. 미국의 트럼프, 중국의 시징핑,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일본의 아베 등 자국의 이해에 한 치의 양보가 없는 팽팽한 줄다리기에 오직 우리 국민의 하나된 자주국방의식으로 평화를 지켜 나가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서울 도심 속 문화와 휴식의 공간 '전쟁기념관(The War Memorial of Korea)' ① 전시실입구 ② 이병형홀 ③ 평화광장 ④ 뮤지엄웨딩홀 ⑤ 연못 ⑥ 호국공원 ⑦ 뮤지엄카페 ⑧ 전사자명비 ⑨ 참수리357호 ⑩ 옥외전시장 ⑪ 평화의 시계탑 ⑫ 형제의 상 ⑬ 6·25전쟁 조형물 ⑭ 어린이박물관 ⑮ 광개토대왕릉비
전쟁기념관은 옥내전시와 옥외전시로 구분되어 있으며 전시자료는 총 5,700여점에 이른다. 14,000여㎡의 옥내전시실은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기증실 ,대형장비실 등 7개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멀리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각종 호국전쟁 자료와 위국 헌신한 분들의 공훈 등이 실물 · 디오라마 · 복제품 · 기록화 · 영상 등의 다양한 전시자료에 따라 역동적이고 입체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6·25전쟁의 발발 원인과 전쟁 경과 및 휴전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쉽고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체험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야외에는 6·25전쟁 당시의 장비를 비롯, 세계 각국의 대형무기와 6·25전쟁 상징 조형물, 광개토대왕릉비, 형제의 상, 평화의 시계탑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기념관 전시실 입구 양측 회랑에는 창군 이래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국군 전사자와 유엔군 전사자명비가 있다.
6·25전쟁 조형물은 6·25전쟁 휴전 50주년을 기념하여 역사를 재조명하고 전후세대에게 안보의식을 고취시켜 전쟁 재발 방지를 다짐하며 미래 평화통일 기반을 조성하고자 설치한조형물로 6·25탑, 호국군상, 석그릇, 참전국기념비 등으로 이루어 졌다.
유엔참전용사 기념비는 유엔창설 70주년을 기념하여 6·25전쟁 당시 전투부대와 의료부대를 파견했던 21개 참전국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나라사랑 정신 고취와 호국안보의식 함양을 위해 설치된 기념비이다. 국가명, 월계관, 부대마크 및 참전 내용, 참전용사에 대한 각 국의 메시지 등이 담겨 있다.
형제의 상은 6·25전쟁 당시 국군과 북한군으로 맞서 싸우던 형제가 전쟁터에서 극적으로 마난 실화를 조형화하여 민족의 화합과 단결, 통일에 대한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참수리357호정 안보전시관 및 야외 전시장은 제2연평해전 당시 치열했던 교전상황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실물과 똑같이 제작하여 전시하고, 6·25전쟁 당시 사용했던 세계 각국의 항공기, 장갑차 등 160여 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일부 장비는 내부를 개방하여 직접체험할 수 있다.
광개토 대왕릉비(廣開土 大王陵碑)는 414년 고구려 제19대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아들 장수왕이 세운 비석이다. 사면에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높이 6.39m, 너비 1.35~2m에 달하는 한국 최대의 비석이다.
비문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주몽의 건국 신화를 비롯하여 광개토 대왕에 이르는 역대 왕의 치적과 약력, 그리고 비의 건립 경위가 기술되어 있다. 제2부는 핵심 부분으로 대왕의 정복 활동에 관한 기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제3부는 묘를 관리하는 수묘인에 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고구려 안악3호분 대행렬도(安岳三號墳 大行列圖)는 고구려 벽화 고분 가운데 먼저 소개할 것은 황해남도 안악군에서 1949년에 발견된 안악3호분 입니다. 357년에 지어진 이 무덤은 다양한 내용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특히 흥미를 끄는 것은 회랑에 그려진 대행렬도 입니다. 안악3호분의 무덤 안 평면도. 입구는 문방, 서쪽 곁방에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널방은 시신을 넣어둔 곳이며, 그에 딸린 회랑에 대행렬도가 그려져 있다. 전체 길이가 10 m가 넘고 높이가 2 m인 회랑의 동벽 남쪽에서 북벽 서쪽까지 이어진 이 그림은, 하나의 주제로 그려진 전세계 고분 벽화 중 가장 많은 인원이 등장하는 대작입니다. 북벽 쪽이 행렬의 앞쪽인데, 앞에는 3 열, 중간에는 5 열, 수레에 탄 주인공이 있는 부분은 7 열로 행진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의전용 세단(李承晩 大統領 儀典用 Sedan, 등록문화재 제396호)은 대한민국(大韓民國) 초대(初代) 대통령(大統領)이 타던 미국 GM사에서 1956년에 제작한 캐딜락 플리트우드 62세단(Cadillac Fleetwood 62 Sedan)으로 미국(美國)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대통령이 기증(寄贈)하였다.
캐딜락 플리트우드 62세단(Cadillac Fleetwood 62 Sedan)의 재원은 미국 GM 1956년 제작, 일체식 강철판 구조, 휘발유 연료용, 엔진형식은 8기통 자동4단 후륜기동으로 중량 2,630kg, 최고출력 289마력/ 4.600rpm, 배기량 5.972cc, 축간거리 3.277mm, 외장은 검은색이며, 번호판에 봉황 마크가 있다.
김일성 승용차(金日星 乘用車)는 1948년 소련(蘇聯)에서 생산된 XIS-100 Limousine은 소련이 마오저뚱(毛澤東)과 김일성(金日星)에게 선물로 준 차량이다. 6.25전쟁 당시 1950년 10월 22일 국군 제6사단 7연대(초산부대)가 평양 동북방 약 100km 지역인 청천강변에서 노획(鹵獲)하였다.
XIS-100 Limousine의 재원은 무게 2.615kg, 길이 5.87m, 넓이 1.98m, 차문 4개, 좌석 7인승, 엔진 8기통(No. 3HC 1100 1087), 색상은 흑색, 주행 거리는 16.000마일(1982년), 차량 번호 뉴저지 주 DLN.71이다. 1951년 6월 이승만 대통령은 이 승용차를 미8군 사령관 워커장군의 부인에게 기념품으로 선사하였다. 워커장군 부인은 1951년 7월 10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차를 인수하고 고향인 조지아로 가던 중 고장이 나서 다른 승용차와 교환하고 말았다.
(사)UN한국참전국협회는 1969년부터 14년간 이 차의 행방을 탐문하던 중 1981년 미국 뉴저지 주의 자동차 수집상이 소유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를 되찾기 위해 많은 대가를 치르고 미국으로 건너 간지 31년만인 1982년 10월 22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UN참전국협회 지갑종 회장은 2013년 7월 12일 6.25 전쟁 정전 제60주년을 기념하여 이 승용차를 전쟁기념관에 기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최초의 대통령 의전차량(儀典車輛)이고 이승만에 이어 제4대 윤보선 대통령도 이 차를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방탄차량(防彈車輛)으로 2000년 3월까지 문화재청 산하 창덕궁관리소에서 보관해오다가 그 해 4월 전쟁기념관(戰爭紀念館)으로 이관 되었다. 2013년 6월부터 11개월 간 MIGHT&MAIN(주)가 2억 원의 예산을 들여 고속도로를 주행할 정도의 완전한 상태로 복원하였다.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유물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글과 사진: 이영일/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