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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하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영천은해사 운부암(永川銀海寺 雲浮庵)

들풀/이영일 2017. 11. 16. 23:09

  영천은해사 운부암금동보살좌상(永川銀海寺 雲浮庵金銅菩薩坐像, 보물 제514호, 경북 영천시 청통면 청통로 951, 은해사)은 신라 헌덕왕 1년(809)에 혜철국사가 창건한 은해사의 운부암에 모셔진 보살상으로 불꽃무늬·꽃무늬·극락조(極樂鳥) 등으로 장식한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는 높이 1.02m의 아담한 작품이다.

  얼굴은 눈꼬리가 약간 올라간 갸름한 형태이며, 온 몸을 휘감은 구슬장식이 무척 화려한 모습이다. 신체 표현은 굴곡 없이 수평적이어서 형식적으로 처리된 느낌이지만 안정감을 주고 있다. 이런 표현은 영덕 장육사 건칠보살좌상(보물 제993호), 대승사 금동보살좌상(보물 제991호)과 비슷한 양식으로 지방적인 특색이 엿보인다. 목에 있는 띠 주름식의 삼도(三道), 가슴 아래 띠로 묶은 매듭 표현, 양 다리에 대칭적으로 흘러내린 옷주름 등은 조선 초기 보살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점에서 고려 후기 경상북도 지역의 지방색을 계승하고 있는 조선 초기의 보살상으로 볼 수 있다.

  영천 은해사운부암(永川 銀海寺雲浮庵)은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팔공산에 있는 은해사의 암자로 글자 그대로 구름 위에 떠있는 절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에 딸린 8곳의 산내 암자 중 하나로, 유서 깊은 참선도량이다. 711년(신라 성덕왕 10)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절을 세울 때 상서로운 구름이 일어났다 하여 운부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고려시대에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이후 중건하여 관음기도 도량으로 전승되어 왔다. 1860년(철종 11) 다시 화재로 소실되자 옹허스님과 침운스님이 중건하였고, 1900년에 보화루()를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법당 원통전(殿)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 선방인 운부난야(), 오른쪽에 요사채 우의당()이 있고, 그 앞으로 보화루가 배치되어 있다. 산령각은 원통전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1862년(철종 13)에 지은‘운부암중건기’의 기록을 통해 관음전인 원통전은 1862년 중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뒤 몇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 정면 3칸·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보물 제514호로 지정된 청동보살좌상(은해사 운부암 청동보살좌상)이 주존으로 모셔져 있고, 불단 뒤에 1862년 조성된 아미타후불탱과 1989년 조성된 지장탱·신중탱이 걸려 있다. 
  누각인 보화루 역시 1862년 원통전과 함께 중건되었다는 기록이‘운부암중건기’와 <조선사찰사료>에 나와 있는데 현존하는 건물은 1900년에 중건된 것이다. 보화루라는 이름은 화엄학() 또는 화엄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은해사와 암자 백흥암에도 보화루라는 누각이 있다. 내부에 운부암의 역사를 기록한‘운부암중건기’,‘장등시주문’,‘선사백초당성우지진찬’,‘팔봉산운부암중수기’ 등 여러 편액이 보관되어 있다. 
  조계종의 선맥을 이어온 운부암은 예로부터 고승대덕들과 선지식()들이 두루 거쳐간 수행처로 유명하다.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했던 경허스님을 비롯하여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동산스님, 운봉스님, 성철스님 등이 운부암에서 수도하였다.

  은해사에서 승용차로 3km정도 오르면 풍수설에서 아주 좋은 곳에 위치하여 암자라기엔 그 자리가 너무 넓고 수채화처럼 편안하다. 세상사 벗어던지고 부처님 가르침을 넘어 부처님처럼 깨쳐가려는 선승들의 수도처였다.

  절의 누각에 위치한 찻집에서 한 잔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껴고 여유를 가지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절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두산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 이태열, 울산광역시북구 향토문화연구소장, 이화찬 울산광역시북구 문화원 회원)[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