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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원식물. 뒤 따르던 동무가 걸려 넘어진 추억, 그령[知風草]

들풀/이영일 2018. 1. 5. 10:07

  그령[학명: Eragrostis ferruginea (Thunb.) P. Beauv.]은 외떡잎식물 벼목 화본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꾸부령, 암그령, 그량, 거령, 지지랑풀, 지렁풀, 결초보은풀, Love-grass, Korean-Lovegrass라고도 한다. 유사종 수크령은 그령에 비해 줄기와 잎이 한층 억센 편이다. 병을 씻는 솔처럼 생긴 이삭을 잘라 꽃꽂이에 쓴다. 가축의 사료나 섬유용, 공업용, 퇴비용, 관상용, 사방용으로 이용한다. 꽃말은 ‘가을의 향연’이다.

  한자 ‘勒(늑)’ 자는 ‘굴레’나 ‘재갈’ 따위를 뜻하기도 하고, 무엇을 ‘묶다’는 의미도 있다. 즉 늑초(勒草)란 ‘동물을 잡아채는 데에 이용하는 풀’이란 의미가 있고, 그령 또한 그런 의미를 가진 우리말로 보인다. ‘영(령)’은 ‘여우(狐)’를 지칭하는 고어일 가능성과 ‘짚’이나 ‘새(禾本型, 화본형 잎)’ 따위로 엮은 물건을 지칭하는 ‘이엉’의 준말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령은 여우가 드나드는 길목에서 ‘여우발목을 낚아채는 풀’이란 뜻일 수도 있고, 이엉처럼 ‘동여매는 풀’이라는 뜻도 포함할 것이다. 한자 구오파초(狗尾把草)의 뜻에도 잇닿아 있다.

  농촌 들녘 제방에서 사람이 다닐만한 길목에 그령 한 다발을 새끼줄 꼬듯이 묶어 두면, 뒤 따라 오던 동무가 걸려서 넘어지게 된다. 사람이 넘어졌으면 넘어졌지, 절대로 그령 다발은 끊어지지 않는다. 그령의 속명에서 이와 관련 있는 라틴명이 명명되어 있다. 속명 에라그로스티스(Eragrostis)는 사랑의 신 에로스(Eros)와 풀이란 의미의 희랍어 아그로스티스(agrostis)가 합성된 이름이다. 그래서 그령속(Eragrostis spp.)의 식물들은 영어로 러브그레스(lovegrass)이며, 서양에서도 사랑하는 연인 간에 인연의 끈을 이어주는 추억의 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령 다발에 걸려 넘어진 피앙세를 가슴으로 안아서 일으켜 본다면, 인연의 끈이 이어지고도 남을 만하다. 종소명 페루기네아(ferruginea)는 ‘녹병(綠病)이 생긴 듯하다(rust-colored)’는 의미의 라틴어로, 잎의 앞뒤 색깔이 서로 다른 데에서 유래한다.

  중국, 히말라야 등지에 분포하고 전국 각처의 길가나 풀밭, 빈터에서 흔하게 자란다. 편평한 줄기는 여러 개가 뭉쳐서 나와 높이 30~80cm 정도로 자란다. 길이 30~40cm, 폭 2~6mm 정도의 잎은 어긋나게 달리고 밑부분이 줄기를 감싼다.

  꽃은 8~9월에 길이 20~40cm 정도의 원추꽃차례로 가지가 어긋나서 퍼지고 털이 없으며 소수는 긴 타원형으로 5~10개의 소화가 들어 있다. 호영은 길이 2~3mm 정도의 좁은 난형으로 예두이다. 열매 영과는 좌우로 약간 편평해지며 타원형으로서 길이 1mm정도이고 꽃밥은 길이 0.8-1.2mm이다.

  생약명(生藥銘)은 지풍초(知風草)이다. 한방에서는 뿌리 윗부분을 타박상으로 인한 몸이 쒸고 아픈 동통 등에 처방한다. (참고자료: 원색한국식물도감(이영노.교학사), 한국의 자원식물(김태정.서울대학교출판부), 네이버·다음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