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慶州 栢栗寺 金銅藥師如來立像, 국보 제28호)은 경주시 북쪽 소금강산의 백률사에 있던 것을 1930년에 국립경주박물관(國立慶州博物館)으로 옮겨 놓은 것이며, 전체 높이 1.77m의 서 있는 불상으로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쳐준다는 약사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은 동방 유리광(琉璃光) 세계를 다시리는 부처로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의 협시하며, 12지신장의 주인이다. 부처(藥師如來)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생들의 병이나 고통을 치료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를 막론하고 섬겨지고 있다. 고려시대까지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한 손에 보주나 약병을 든 약인을 취했다면, 조선시대 때는 아미타구품(阿彌陀九品)인 약병(藥甁)을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삼존불(三尊佛)은 본존불(本尊佛)과 좌우에서 시립하는 보처불보살(補處佛菩薩)을 합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미타 삼존(彌陀 三尊: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석가 삼존(釋迦 三尊: 석가여래-문수보살-보현보살), 약사 삼존(藥師 三尊: 약사여래-일광보살-월광보살)이 있다.
우주의 부처는 불·물·흙·바람·마음 이렇게 다섯이다. 삼존불이란 없다 석가모니는 부처가 아니고 인간이다 그래서 자신이 이 부처님들을 방해를 할까 봐서 불상을 만들지 말라고 유언을 했다 그 유언을 지키는 사람들은 네팔의 티벳사람들이다. 우리 한국 불교는 잡탕이고, 유언을 지킨게 한가지도 없다.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慶州 栢栗寺 金銅藥師如來立像)은 머리는 신체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이며, 둥근 얼굴·긴 눈썹·가는 눈·오똑한 코·작은 입 등에서는 우아한 인상을 풍기고 있지만, 8세기 중엽의 이상적인 부처의 얼굴에 비해 긴장과 탄력이 줄어든 모습이다.
커다란 체구에 비해 어깨는 약간 빈약하게 처리된 느낌이지만 어깨의 굴곡은 신체에 밀착된 옷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두 팔에 걸쳐 흘러내리고 있으며 앞가슴에는 치마의 매듭이 보인다. 앞면에는 U자형의 주름을 연속적인 선으로 그리고 있는데 조금은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신체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중후해지며 옷자락들도 무거워 보이는데, 이것은 상체를 뒤로 젖힘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솟아오른 단전과 더불어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두 손은 없어졌으나 손목의 위치와 방향으로 보아 오른손은 위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에는 약그릇이나 구슬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 백률사 대웅전(慶州 栢栗寺 大雄殿, 문화재자료 제4호)은 불교를 국법으로 허용해줄 것을 주장하다 순교한 이차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절이다. 이차돈의 목을 베었을 때 머리가 떨어진 자리에 ‘자추사’라는 이름의 절을 세웠다고 한다. 언제부터 ‘백률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조선시대의 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이 불상의 우람한 신체와 불의의 선묘적(線描的) 특징에서 조성 연대는 800년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다소 평면적인 느낌을 주지만 신체의 적절한 비례와 조형기법이 우수하여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과 함께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참고문헌: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배근휘와 함께 떠나는 대한민국 국보를 찾아서/ 글과 사진: 이영일,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