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사(咸平 龍泉寺)는 전남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길 209 모악산에 위치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白羊寺)의 말사이다. 600년(무왕 1)에 행은존자(幸恩尊者)가 창건하였다.
용천사라는 이름은 현재 대웅전 층계 밑에 있는 사방 1.2m 가량의 샘에서 유래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로 통하는 이 샘에 용이 살다가 승천하였다고 하여 용천이라 불렀으며, 용천 옆에 지은 절이라 하여 용천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645년(의자왕 5)각진(覺眞)이 중수하였고, 1275년(충렬왕 1)각적국사(覺積國師)가 중수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세조·명종 때의 중수를 거쳐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정유재란 때 전소되었다. 그 뒤 1632년(인조 16)에 중창하여 이전의 규모를 갖추었고, 1638년에는 쌍연(雙衍)이 중수하였다.
1705년(숙종 31)에는 중건한 뒤 「단청기」를 지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범우고(梵宇攷)』·『가람고(伽藍考)』 등의 지리서 및 사찰관련 문헌에 용천사의 이름이 보인다. 1938년에 다시 중수하였으나, 6·25전쟁 때 인민군들의 방화로 전소되었다. 그 뒤 1964년에 금당(錦堂)이 옛 보광전 자리에 대웅전과 요사를 지으면서 중창하였다. 1996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64년에 금당대사가 옛 보광전 자리에 건립한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으며, 문화재로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4호인 석등(石燈)과 해시계가 있다. 쑥돌로 만든 높이 2.37m의 석등은 1685년(숙종 11) 6월에 만들었는데, 그 크기나 짜임새가 투박하면서도 정감이 있어 조선시대 석등으로서는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옥개석 네 귀에 조각한 거북은 간략한 수법이나 모양에 세련미가 있다. 또, 해시계는 석등과 동시대에 만든 것으로, 두께가 14㎝, 가로 세로 39㎝의 정사각형 중 반쪽만 남아 있다. 6·25전쟁 때 유실되었다가 1980년 경내의 흙더미 속에서 발견되어 보관중이며, 낮 시간에 해당되는 묘시부터 유시까지가 표시되어 사용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함평 용천사석등(咸平 龍泉寺石燈, 전라남도도유형문화재 제84호)은 용천사 내에 놓여 있는 석등으로,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세부분으로 이루어진 받침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을 얹었다.
아래받침돌은 연꽃무늬를 두르고, 가운데기둥을 받고 있는 윗면의 네 모서리에는 거북형상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8각의 가운데기둥은 각 면에 글씨를 새겼다. 윗받침돌 역시 8각으로, 연꽃무늬를 조각하여 윗돌을 받도록 하였다.각의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화사석을 받고 있다. 화사석은 조선시대의 일반형인 4각으로, 면마다 사각이 둥근 창을 두어 독특하고 아름답다. 지붕돌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습을 한 팔작지붕을 본뜬 형태로, 매우 두껍워 보인다.
받침부분은 8각을 이루다 화사석과 지붕돌에서 4각의 형태를 보인다. 가운데기둥에 새겨진 기록을 통해 조선 숙종 11년(1685)에 비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크기나 짜임새가 투박하고 정감있어 조선시대의 4각석등 중에서도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참고문헌: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회/ 글과 사진: 이영일,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