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종에만 있는 독창적인 장치: 세계의 모든 종 가운데 오직 우리나라 종에만 있는 독창적인 것이 바로 종 상부에 있는 음관과 종구 바로 밑에 있는 명동이다. 음관은 음통 또는 용통이라고도 하는데, 종의 음질과 음색을 좋게 하는 음향학적인 기능을 한다고 추정된다. 우리나라 종은 위에 음관을, 아래에는 명동을 설치하여 종 자신의 몸통에서 나는 소리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에게 전파되어 나가는 방법까지 염두에 두고 설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우리 조상들은 음향학, 진동학 등의 설계와 주조 및 타종 방식을 최적화하여 성덕대왕신종과 같은 훌륭한 종을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범종의 제작은 우리 선조들의 과학적 사고력이 우수하였음을 다시 한 번 새롭게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음관, 공명을 전달하는 장치: 음관(음통)은 용모양의 용뉴와 함께 종의 무게를 지탱하면서 종을 종각에 거는 중요한 요소이다. 성덕대왕신종의 상단 천판을 관통해서 종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음관은 길이가 770mm이고, 내부 구멍의 직경은 입구 쪽(아래쪽)이 82mm, 바깥쪽(위쪽)이 148mm 로 나팔관 모양이다.
연구 결과, 음관은 종 내부의 음을 외부로 효율적으로 방사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음향학적으로 크게 두 가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소리의 공명전달(Resonance Transmission) 효과와 음향필터(Acoustic Filter) 효과이다.
공명전달은 모든 관악기의 소리 발생 원리와 같다. 공기구멍은 그 길이에 따라 특정한 음높이의 공명음을 만든다. 즉, 구멍에 입사되는 음과 반사되는 음이 서로 간섭하여 특정한 주파수의 음을 공명 증폭시킨다. 관악기에서는 구멍의 길이를 조절해서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를 만들어 연주한다. 같은 원리로 음관은 종 내부에서 발생한 소리를 공명 증폭시켜 외부로 전달되도록 만든다.
종은 많은 고유주파수 성분들을 가지므로 종소리에는 저음부터 고음까지 다양한 소리 성분들이 합성되어 있다. 가장 낮은 주파수는 은은하게 오래 지속되는 여음을 만들고, 두 번째 고유주파수는 종소리의 음높이를 지배하는 기본음을 만든다. 성덕대왕신종에서 여음은 64Hz(1초에 64회 진동)이고, 기본음은 168Hz로 진동한다. 음관의 길이를 적절히 조절하여 중요한 주파수 음을 공명 증폭시킬 수 있다. 또 구멍의 단면을 나팔관 모양으로 만들어줌으로써, 밖으로 효율적으로 전달되도록 만들 수가 있다.
음향필터로서, 음관은 소리를 높낮이에 따라 외부로 잘 전달하기도 하고 종 내부에 가두기도 한다. 성덕대왕신종의 음관은 300Hz 이상의 고음을 외부로 잘 전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날에는 음향학 이론과 컴퓨터를 이용한 정밀 계산으로 종에 적합한 최적의 음관을 설계할 수 있으나, 옛 장인들은 실험과 경험을 통해 종소리의 성능을 우수하게 만드는 음관을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명동, 웅장한 소리를 만드는 장치: 종 아래 땅속으로 구멍을 파서 만든 명동도 종소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명동은 종 내부의 주 공동과 함께 닫힌 공간을 만든다. 이러한 닫힌 공간은 공간의 크기와 형상에 따라 공명음이 발생한다. 앞에서 언급한 관악기의 소리와 같은 원리이다. 종체가 진동해서 내는 소리의 주파수와 공명음의 주파수가 일치한다면 종소리는 공명증폭되어 매우 웅장하게 들린다. 이를 위해서는 공명시킬 종소리의 주파수와 동일한 공명주파수를 갖도록 닫힌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부분의 종에서 주 공동만으로는 이 조건을 만들기 어려우므로, 명동을 파서 공간을 크게 해주면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가 있다.
오늘날에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다양한 형상과 크기의 명동에 대한 정밀 설계가 가능하나, 먼 옛날 주종박사들은 어떻게 명동을 만들었는지 그 노력과 지혜가 감탄스럽다. 종을 만든 뒤 명동을 파면서 소리를 들어보고, 땀 흘리면서 구멍을 다듬어 가던 장인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작성자: 문화재청/ 글: 김석현(강원대학교 기계융합학부 교수)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