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송광사(順天 松廣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이다. 대길상사(大吉祥寺)·수선사(修禪社)라고도 하며,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우리 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로 승보사찰(僧寶寺刹:훌륭한 스님을 가장 많이 배출함으로서 얻어진 이름)로서 매우 유서깊은 절이다. 수선사는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에 의해 이루어진 혁신불교적인 신앙결사(信仰結社)의 단체명인 동시에 사찰의 명칭이다. 선교일치의 완성과 간화선의 선양이라는 불교사상적인 의미와 실천불교로서의 임무를 이루었으며, 우리나라 조계종(曹溪宗)의 시초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수선사의 불교는 고려 후기 불교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대 불교계 혁신운동의 중심체였을 뿐만 아니라, 그 뒤에도 면면히 이어져서 오늘날까지 한국불교사의 큰 흐름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절 일원이 선암사 일원과 더불어 명승 제65호로 지정되어 있다.
국가지정문화재로는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順天 松廣寺 木彫三尊佛龕, 국보 제42호)을 비롯하여 국혜심고신제서(慧諶告身制書, 국보 제43호), 순천 송광사 경질(順天 松廣寺 經帙, 보물 제134호)과 순천 송광사 경패(順天 松廣寺 經牌, 보물 제175호), 순천 송광사 약사전(順天 松廣寺 藥師殿, 보물 제302호), 순천 송광사 영산전(順天 松廣寺 靈山殿, 보물 제303호), 순천 송광사 금동 요령(順天 松廣寺 金銅 搖鈴, 보물 제176호), 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順天 松廣寺 高麗古文書, 보물 제572호) 2점, 쌍계사 팔상전팔상탱(雙磎寺 八相殿八相幀, 보물 제1365호), 송광사영산전후불탱.팔상탱(松廣寺靈山殿後佛幀.八相幀, 보물 제1368호), 순천송광사 티베트문 법지(順天松廣寺 tibet文 法旨, 보물 제1376호), 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順天 松廣寺塑 造四天王像, 보물 제1467호), 순천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소조16나한상 일괄(順天 松廣寺 木造釋迦如來三尊像 및 塑造十六羅漢像 一括, 보물 제1549호) 등이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는 자정국사 사리함(慈靜國師 舍利函, 제18호), 능견난사(能見難思, 제19호), 송광사 금강저(松廣寺 金剛杵, 제22호), 고봉국사 주자원불(高峰國師 廚子願佛, 제28호) 등이 있다. 이 중 능견난사는 바루로서 풀리지 않는 신비성이 있다.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順天 松廣寺 木彫三尊佛龕, 국보 제42호)은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 보조국사 지눌이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을 불감(佛龕)이라 한다. 불감은 그 안에 모신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불감(佛龕)은 모두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운데의 방을 중심으로 양쪽에 작은 방이 문짝처럼 달려 있다. 문을 닫으면 윗부분이 둥근 팔각기둥 모양이 되는데, 전체 높이는 13㎝이고, 문을 열었을 때 너비 17㎝가 되는 작은 크기이다.
가운데 큰 방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臺座) 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이 조각되어 있고, 양쪽의 작은 방에는 각각 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본존불은 양 어깨를 감싼 옷을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2줄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었고, 무릎 위에 올리고 있는 왼손에는 물건을 들고 있다. 오른쪽 방에는 실천을 통해 자비를 나타낸다는 보현보살을 배치하였는데, 코끼리가 새겨진 대좌 위에 앉아 있다. 보살의 왼쪽에는 동자상이, 오른쪽에는 사자상이 서 있다. 왼쪽 방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다. 문수보살은 사자가 새겨져 있는 대좌 위에 서 있으며, 보살의 좌우에는 동자상이 1구씩 서 있다.
이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은 매우 작으면서도 세부묘사가 정확하고 정교하여 우수한 조각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세부의 장식과 얼굴 표현 등에서는 인도의 영향을 받은 듯 이국적인 면이 보이며, 불감의 양식이나 구조에서는 중국 당나라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국내에 남아 있는 불감류 가운데 매우 희귀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혜심고신제서(慧諶告身制書, 국보 제43호)는 고려 고종 3년(1216)에 조계산 송광사 제2세 진각국사 혜심(眞覺國師 慧諶)에게 대선사(大禪師)의 호를 내릴 것을 제가(制可)한 것이다. 이것은 능형화문(菱形花文)의 무늬가 있는 홍, 황, 백색 등의 비단 7장을 이어서 만든 두루마리에 묵서한 것으로, 크기는 가로 3.6m, 세로 33㎝이다. 이것은 고려시대 승려에게 하사한 제서 중 몇 점 되지 않는 귀중한 자료이다.
순천 송광사 경질(順天 松廣寺 經帙, 보물 제134호)은 두루마리 형태의 경전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불교 공예품이다.
가느다란 대나무 조각을 색실로 엮어서 직사각형 모양으로 만들고, 끝단에는 삼각형의 비단을 붙여 끈을 달아 경전을 말 수 있도록 하였다. 대나무는 색실로 엮어 꽃무늬를 넣었고, 사방에는 금강저문양이 표현된 비단을 두르고 뒷면에는 종이를 발랐다. 전체적으로 손상이 심한 편이지만 여러 가지 색실로 나타낸 문양은 아직도 정교하며 잘 남아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하는 유물로 그 가치가 높다.
순천 송광사 경패(順天 松廣寺 經牌, 보물 제175호)는 총 43개로 상아패 10점과 목제패 33점이다. 경패는 원래 불경을 넣은 나무상자에 경전의 이름을 기록하여 달아서 사용하던 것이다.
표면에 액(額)을 만들어 불경의 명칭과 번호를 새겼다. 가장자리에는 덩굴무늬, 학무늬 등 여러가지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뒷면에는 방형의 구획 안에 보살, 나한, 신장상 등을 돋음새김하였는데, 상의 위쪽에는 장막,격자창 등을 조각하기도 하였으며, 아래에는 연화대좌, 난간 등을 표현하였다. 여러 상들의 표현된 방형 구획 아래에는 정(貞), 주(周), 진(晉), 하(何) 등의 함호(函號)가 연꽃, 집 등의 모양 안에 새겨져있다. 측면(약 1㎝두께)에는 둥근 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그 중 세 개는 뚫어새긴 것이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되며, 조각의 정교함이나 그 수법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순천 송광사 금동 요령(順天 松廣寺 金銅 搖鈴, 보물 제176호)은 높이 20.6㎝, 지름 6.6㎝의 청동제이지만 도금한 흔적이 남아 있다. 요령(搖鈴)은 절에서 승려들이 의식을 행할때 흔들어 소리내는 도구이다.
몸은 4각형이고 각 면이 팽창되어 둥근 형태를 하고 있다. 몸 위에는 마디가 하나있는 긴 손잡이가 있으며 몸과 접하는 곳은 후세에 보수한 흔적이 있고 손잡이 윗부분도 손상을 입었다. 손잡이 아랫부분은 둥글며, 큼지막한 꽃이 한 송이씩 아래를 향하고 있다. 몸 전체 각 면을 구분하는 모서리와 입구 주위에 굵은 돌출선을 돌리고 그 테두리 안에 몸을 꼬며 위로 치솟는 용 한 마리와 그 사이 공간에 구름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각각의 면에 있는 무늬는 하나의 틀에서 찍어낸 듯 하다. 입구 부분은 중앙에 반원형을 만들어 단조로움에 변화를 주었다.
이 요령은 예로부터 송광사에 전해 내려온 귀중한 금속공예품으로서 우아한 형태와 아름다운 조각이 돋보이는, 우리 나라에 현존하는 요령 중에도 걸작에 속하는 동시에 가장 오랜 예로 평가된다.
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順天 松廣寺 高麗古文書, 보물 제572호)는 모두 고려시대의 유물로 절에 관한 중요자료이다.
지정된 유물을 보면 첫째, 수선사의 창건연혁과 관련된 형지기 1점, 둘째, 수선사에 소속되어 있는 노비를 기록한 노비문서 1점으로 총 2점이 있다.
고려시대에 묵으로 쓴 글씨가 남아있는 것은 매우 희귀한 예로, 오늘날까지 원래 모습대로 보존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은 고려시대 문서의 양식과 필법 등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순천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소조16나한상 일괄(順天 松廣寺 木造釋迦如來三尊像 및 塑造十六羅漢像 一括, 보물 제1549호)은 송광사 응진당에는 석가여래삼존상을 비롯하여, 아난·가섭존자 그리고 16나한, 제석천, 범천, 인왕, 사자를 모두를 갖춘 27구의 상들이다. 미륵보살입상을 제외한 26구의 상들은 17세기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응원(應元)을 비롯한 조각승들이 조성한 상으로 알려져 있다.
삼존상(三尊像)은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로 구성된 수기삼존형식으로 조선시대 삼세불상의 대표적인 도상이다. 본존상은 수종사 불감에서 발견된 15세기 금동불좌상과 같은 조선전기의 조각전통을 계승하면서 얼굴표정이 온화하고 신체가 부드럽고 양감이 강조되었으며,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어 17세기 전반기 조각으로서는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십육나한상들은 목심소조(木心塑造)로 제작되었다.
사자상(使者像) 대좌의 명문을 통해서 1624년(인조 2)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고려와 조선전기의 16나한상 조각이 온전하게 전해지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이 송광사 16나한상들은 16존이 모두 갖춰져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높다.
능견난사(能見難思, 시도유형문화재 제19호)는 송광사에서 음식을 담는데 사용하던 그릇이다. 송광사 제6대 원감국사가 중국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가져왔다고 전해지며, 만든 기법이 특이하여 위로 포개도 맞고 아래로 맞춰도 그 크기가 딱 들어 맞는다고 한다.
조선 숙종이 그것과 똑같이 만들어 보도록 명했지만 도저히 똑같이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만들기는 어렵다.”란 뜻에서 능견난사(能見難思)라는 이름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현재 송광사 박물관에 29점이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글과 사진: 이영일,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