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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대왕의 사모곡이 스며있는 파주 보광사(坡州 普光寺)

들풀/이영일 2018. 6. 7. 07:01

  보광사(普光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신라 진성여왕 8년(894) 왕명으로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후 고려 고종 2년(1215)에 원진국사(圓眞國師) 그리고 다시 우왕14년(1388)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중창하였다 한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모든 건물이 불에 탄 것을 광해군 14년(1622)에 법당과 승당을 복원하였다. 그 후 현종 8년(1667)에 지간(支干)·석련(石蓮) 두 대사가 보수하였고 영조 16년(1740)에 보수가 이루어지면서 인근에 있는 영조의 사친(私親) 숙빈최씨의 능인 소령원(昭寧園)의 기복사(祈福寺)로 삼았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관음전·나한전·원통전·응진전·지장전·산신각·만세루(萬歲樓)·승당·범종각·별당·수구암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1215년에 만든 목조비로자나삼존불(木造毘盧遮那三尊佛)과 문수(文殊)·보현보살상(菩賢菩薩像)이 봉안되어 있고, 나한전에는 1863년에 조성한 삼세불(三世佛)과 나반존자(那畔尊者),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지장전에는 1863년에 조성한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이 밖에도 영조의 친필 편액과 김정희(金正喜)의 친필 편액, 부도 1좌가 있다.

  보광사 대웅보전(普光寺大雄寶殿, 시도유형문화재 제83호)은 경기 파주시 광탄면 보광로474번길 87,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양식(多包系樣式)의 팔작집이다. 장대석의 높은 기단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지름이 대략 1자 5치가량 되는 굵은 기둥을 세운 조선후기의 건축물 양식을 띠고 있다.

  건물의 벽면은 정면을 제외한 세면이 모두 판벽으로 되어 있으며 기둥 한 칸 씩마다 내용이 다른 불화가 그려져 있다. 이 불화는 1898년 경의 대표적인 판벽화(板壁畵) 로서 금강역사도, 용선인접도, 괴석도, 대호도, 노송도, 연화 화생도 등과 코끼리를 타고 있는 동자를 그린 동자도가 그려 져 있다. 지붕 위의 용마루 양끝에는 용머리 모양의 취두(鷲頭)가 있다.

  대웅보전에 모셔진 다섯분의 부처님중 본존으로 높이 106cm, 어깨폭이68cm이다. 고려 1215년(고종 2년)원진국사(圓眞國師)가 중건할 당시 법민대사(法敏大師)가 목조불보살상(木造佛菩殺像) 5위를 봉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본존인 목조석가여래좌상(木造釋迦如來坐像)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좌상과 아미타여래좌상으로 이루어진 삼세불과 그 옆 협시불로 자씨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입상으로 모셔져 있다. 가로152cm, 세로40cm크기의 목판에 양각(陽刻)으로 조각하였다.

  대웅보전 천장 빗반자에는 불교적인 그림 외에 도석인물(道釋人物), 화훼(花卉) 등 다양한 그림들로 가득하다. 주제별로 살펴보면 주악비천(奏樂飛天)상이 13점, 도석인물상이 7점, 화훼와 화조를 그린 것이 13점, 기명(器皿)을 그린 것이 1점이다. 이 그림들은 대부분 호분이 칠해진 바탕위에 짙은 먹이나 채색을 더하여 그려졌는데, 전문적인 화원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대상을 민화적 표현방식으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대웅보전 편액(大雄寶殿 扁額)‘甲子中秋 玉澗書’라는 관지가 있으며, 글자의 구조가 단정하고 필선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영조의 친필로 전해진다.

  원래 이런 취두는 조선 중기까지 주로 궁궐이나 관아의 중심 건물에 쓰이던 것이었는데 조선 말기에 이르러 서울주변의 사찰에서도 사용되었다. 이 건물의 건립연대는 19세기 말이며 건물의 규모나 형태가 크고 웅장한데다가 세부적으로 처리된 수법은 당시의 시대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파주 보광사 숭정칠년 명 동종(坡州 普光寺 崇禎七年 銘 銅鐘, 시도유형문화재 제158호)은 원래 대웅보전의 오른쪽 범종각에 안치되었던 것을 최근에는 대웅보전 안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이 종은 총 높이 98.5cm의 중형 범종으로서 전체적으로 푸른 녹빛이 감돌며, 볼륨감과 안정감이 있다. 전체적인 형태를 살펴보면 한국 종의 가장 큰 특징인 음통이 없고(종의 연결부분), 한국 종이 한 마리의 용으로 용뉴를 표현하는 반면, 두마리의 용으로 용뉴가 표현되었음을 볼 수 있다. 두 마리의 용으로 용뉴를 표현하는 것은 중국 범종의 특징이다. 몸통을 보 면, 몸통은 띠를 둘러 구획을 나누었는데 크게 세부분으로 나뉜다. 우선 상단에는 연꽃모양이 아래를 향하게 장식하고, 그 아래에 4개의 사다리꼴 유곽(乳廓)과 교대로 4구의 합장보살입상이 배치되었다. 중단에는 3줄로 구성된 띠 장식대를 두르고 있으며, 하단에는 구연부(口緣部)로부터 조금 위쪽에 파도 무늬와 용으로 구성 된 하대(下臺)가 있으며, 이 하대와 띠 장식 사이의 공간에 발톱이 다섯 개인 용과 조성 경위를 알려주는 명문(銘文)이 있다.

  명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조선 인조 12년(1634)에 설봉자(雪峯子)가 만들었다고 나와 있다. 이 범종은 조선 초기의 한중혼 효형(韓中混淆型) 종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서 현등사 종이나 설봉자의 또 다른 작품인 고려사 종과 양식이 매우 흡사하다. 이런 유형은 17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전남지역의 종에도 나타난다.

   보광사 어실각(普光寺 御室閣)은 영조대왕의 사모곡이 스며있는 곳으로 대웅보전 오른편 위쪽에 있으며 1740년(영조16) 보광사를 숙빈최씨의 묘소인 소령원(昭寧園)의 기복사찰로 삼으면서 건립되었다.

  조선 제19대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 인 숙빈최씨(淑嬪崔氏) 동이(同伊)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숙빈 최씨는 7세에 궁에 들어가 궁녀가 된후 숙종의 승은을 받아 숙빈에 봉해지고 1694년(숙종20)에 영조를 낳았다.

  어실각 바로 앞에 영조가 생모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심었다는 300년된 향나무가 자라고 있어 영조의 애틋한 효심을 엿볼 수 있다.

  원통전(圓通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고 불화로는 삼장탱화가 있다. 원통전은 대중들에게 가장 친근한 보살인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신 전각으로 대비전(大悲殿), 보타전(寶陀殿)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장전(地藏殿)은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로서 1994년에 지어졌다. 안에는 지장삼존상을 비롯해서 시왕상, 판관, 녹사, 인왕상, 동자상 등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전 앞에는 무영탑이 조성되어 있다.

  석불전(石佛殿)은 1981년에 조성한 대불로서 ‘호국대불(護國大佛)’로도 불리는데, 대웅보전에 모셔져있는 보살의 복장(腹藏)에서 출현한 부처님 진신사리11과 뿐만 아니라 5대주에서 가져온 각종 보석과, 법화경, 아미타경 및 국태민안 남북통일의 발원문 등이 함께 석불 복장에 봉안되었다. 12.5m나 되는 웅장한 규모가 보는 이를 압도할 뿐만 아니라 정교한 조각솜씨가 돋보인다.


  수구암(守口庵)은 보광사(普光寺)에 딸린 암자(庵子)이다. 보광사에서 좌측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이 암자의 수구(守口)는 ‘입을 지킨다’는 뜻이다.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것은 말을 적게 하고 많이 들으라는 뜻이다. (참고문헌: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보광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글과 사진: 이영일,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