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바귀[학명: Ixeridium dentatum (Thunb.) Tzvelev]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이름은 ‘맛이 쓴 상추’라는 의미다. 쓴귀물, 싸랑부리, 쓴나물, 씸배나물, Dentata-ixeris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치연고채(齿缘苦荬)로 표기한다. 잎 가장자리(緣) 모양이 이빨(齒) 모양이란 데에서 명명된 종소명 덴타타(dentata)란 라틴어를 20세기 들어서 번역한 이름이다. 유사종 선씀바귀는 잔디밭 같은 초지에 산다면, 씀바귀는 밭 언저리나 들길 가장자리에서 주로 살고, 벌씀바귀는 습한 경작지 언저리에서 산다. 벌씀바귀는 잎의 기저(基底) 부분이 깊게 갈라져 줄기를 감싼 이저(耳底) 형태이기 때문에 쉽게 구별된다. 좀씀바귀도 식물체가 소형이고 잎이 둥근 것이 특징이다. 씀바귀는 밝은 노란색 꽃이 피지만, 흰꽃이 피는 흰씀바귀(f. albiflora)도 있다. 꽃말은 ‘순박함’이다.
《시경詩經》〈곡풍(谷風)〉에 “누가 씀바귀를 쓰다고 하였던가? 내게는 달기가 냉이와 같네”라는 노래 구절이 나온다. 쓴 씀바귀가 오히려 냉이처럼 달다는 것인데 반어법으로 표현한 글이다. 남편한테 버림받은 여자가 부른 노래니, 씀바귀의 쓴맛쯤이야 버림받은 아픔에 비하면 오히려 달콤한 맛이라는 비유다. 쫓겨난 조강지처의 슬픔과 아픔이 구구절절이 배어 있다.「따뜻한 동쪽 바람 불더니 어느새 날 흐리고 비가 내리네/애써서 마음 모아 함께하다가 이리도 화를 내니 너무하네요/순무를 뽑고 무 뽑을 땐 뿌리만 필요한 것이 아니랍니다」
회한과 원망에 이어 “쫓겨나니 터벅터벅 걷는 걸음은 마음속에 가고 싶지 않아서라오”라고 비통한 심정을 읊은 연후에 나오는 것이 씀바귀의 비유다. 버림받은 이 여인, 크나큰 아픔을 겪은 만큼 인생의 쓴맛도 관조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선 것이 아닐까? 씀바귀 맛도 진짜 달게 느껴졌다면 실연의 아픔쯤은 이겨냈을 것 같다.
씀바귀가 달다고 노래한 인물이 또 있다. 주 태왕(周太王)으로 주나라를 건국한 무왕의 시조이니 기원전 11세기 훨씬 이전의 인물이다. 역시 씀바귀가 달다는 표현을 반어법으로 사용했다. 태왕이 처음 가솔을 이끌고 주나라 땅 들판으로 집을 옮기어 움집을 짓고 살면서 가문을 일으켰으니 기름진 음식은 찾지도 않았고, 밭에서 캔 씀바귀도 그저 엿처럼 달다고 느끼며 검소한 생활을 했다. 씀바귀가 엿처럼 달다는 뜻인 ‘근도여이(菫荼如飴)’라는 사자성어가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근검절약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어쨌든 여기서도 씀바귀는 원래 무지하게 쓴 나물인데 고생을 하면서 검소하게 살다 보니 그 쓴 씀바귀마저 엿처럼 달다고 한 것이다. 뒤집어보면 고대인들에게 씀바귀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나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달콤한 음식도 많은데 쓰디쓴 씀바귀를 사람들이 굳이 좋아했을 것 같지는 않다. 씀바귀를 가리키는 한자에도 옛날 사람들의 이런 인식이 반영돼 있다. 씀바귀는 한자로 도(荼)라고 쓴다. 한자를 풀어보면 풀 초(艹) 자 아래에 나머지 여(余) 자로 이뤄진 글자다. 나물로 캔 여러 풀 중에서 다른 풀을 다 고르고 난 후에 남은 식용이 가능한 풀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먹을 수 있는 나물 중에서 가장 맛이 없다는 뜻이니 씀바귀가 환영받지 못한 이유를 한자 이름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모진 구박을 받았으면서도 기원전 11세기 이전부터 현재까지 무려 3천 년 이상 사람들 식탁에 오른 것은 씀바귀에 특별한 맛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입에 쓴 것이 몸에는 좋다는 옛말은 씀바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이른 봄에 씀바귀를 먹으면 그해 여름은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했고 “춘곤증을 막아주어 봄철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말도 있다. 옛말 그른 것 하나도 없다는 말처럼 모두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허준은《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씀바귀는 성질이 차면서 맛이 쓰다고 했으니 다시 말해 여름철 더위를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이고,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키며 잠을 덜 자도록 도와준다고 했으니 곧 씀바귀를 먹으면 춘곤증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씀바귀는 고들빼기와 함께 봄철 춘곤증을 예방하는 대표적인 나물로 꼽혀왔다.
씀바귀가 몸에 좋은 과학적인 이유인데, 쌉싸래한 맛은 오히려 식욕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니 미각적으로 씀바귀가 좋은 이유다. 대표적인 봄나물로 3천 년 넘게 맛있게 먹고 있으면서도 비유해서 말할 때는 실연의 아픔보다 달다느니, 고생할 때의 고통에 비하면 엿과도 같은 맛이라느니 입방아를 찧으니 씀바귀 입장에서는 이런 뒷담화가 없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간의 속성이 봄나물 씀바귀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철(鄭澈;1536~1593)의 ‘씀바귀’와 관련된 시조가 있다.「씀바귀 데운 국물이 고기보다 맛있네/초옥 좁은 곳 그것이 더욱 내 분수이라/다만 때때로 님 그리워 근심 못이겨한다.」
전국의 농촌 들녘의 풀밭에서 자란다. 가는 줄기가 바로 서서 자라며, 달리는 줄기(走出枝)를 내지 않는다. 잎에서 난 잎(根生葉)은 긴 잎자루가 있으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겹에움모양(缺刻狀)이고, 줄기에서 난 잎(莖生葉)은 어긋나며(互生), 그 기부는 주걱모양으로 줄기를 감싼다.
꽃은 4~7월에 황색으로 피며, 줄기 끝에서 고른꽃차례모양(散房狀)의 두화(頭花)로 관상화(冠狀花)는 없고 모두 설상화(舌狀花)다. 총포(總苞) 바깥조각(外片)은 5~6개이고, 화주(花柱)가 길어지면서 꽃가루를 방출한다. 여윈열매(瘦果)가 깃털(冠毛)로 풍산포(風散布)한다.
생약명(生藥銘)은 고거(苦苣), 산고매(山苦買), 고채(苦菜), 황과채(黃瓜菜), 소고거, 활혈초(活血草), 은혈단(隱血丹), 유동(遊冬)이다. 말린 약재를 1회에 2~4g씩 200cc의 물로 달여서 복용한다. 타박상이나 종기에는 생풀을 짓찧어서 환부에 붙인다. 음낭습진은 약재를 달인 물로 환부를 닦아낸다.
섬유질이 풍부하고 칼륨과 칼슘, 비타민 C, 당질 등의 영양소가 포함돼 있어 위장을 튼튼하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소화 기능을 돕고 열을 풀어 심신을 안정시켜주어 한방에서는 해열, 건위, 폐렴, 간염, 종기의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적용질환은 소화불량, 폐렴, 간염, 음낭습진, 타박상, 외이염, 종기 등이다. 씀바귀의 트리테르페노이드 성분은 면역력을 증진하고 질병에 대한 치유력을 높이며, 시나로사이드 성분은 몸속 활성산소를 제거해 노화를 방지해준다. 쓴맛을 내는 주성분인 이눌린에는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씀바귀는 콜레스테롤이 쌓이는 것을 막아줘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능도 있다. 국내 한 대학연구소에서는 씀바귀 성분을 조사한 결과, 토코페롤에 비해 항산화 효과가 14배, 항박테리아 효과가 5배, 콜레스테롤 억제 효과가 7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씀바귀에 함유된 알리파틱과 시나로사이드 성분 때문에 항암.항알레르기 효과도 높다고 한다. 이밖에도 비타민 A의 함유량은 배추의 124배가 된다고 한다.
이른봄에 뿌리줄기를 캐어서 나물로 무쳐 먹거나 지짐이로 해서 먹는다. 쓴맛이 강하므로 데쳐서 찬물에 오랫동안 우려내어 조리해야 한다. 어린잎도 같은 요령으로 나물로 해 먹을 수 있다. 자란 것은 말려서 차나 효소를 만들어 먹는다. 특히 김치는 쌉쌀한 맛과 독특한 풍미가 있는데, 이눌린이란 성분이 쓴맛을 내며 항암효과를 가지고 있다. (참고자료: 원색한국식물도감(이영노.교학사), 한국의 자원식물(김태정.서울대학교출판부), 네이버·다음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생명과학 사진작가)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