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씀바귀[학명: Ixeris stolonifera A.Gray]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벋은 씀바귀가 논두렁이나 비탈진 곳에 뿌리가 뻗어나가면서 사태가 나는 것을 방지한다는 뜻에서 유래 하였다고 한다. 싸랑부리, 쓴나물, 싸랭이, 둥근잎씀바기, 둥굴잎씀바귀, 사태월싹, Creeping-lettuce 라고도 한다. 바닷가 모래땅에서 자라는 것을 갯씀바귀(I. repens), 육지에서 논둑과 같이 습기가 있는 곳에서 자라는 것을 벋음씀바귀(I. japonica)라고 한다. 꽃말은 평화이다.
씀바귀는 쌉싸래한 맛 때문에 먹는다. 쓴맛이 오히려 입맛을 당기는 핵심 경쟁력인데 어릴 때는 그 쓴맛의 진가를 잘 깨닫지 못한다. 그저 쓰기만 할 뿐이어서 씀바귀나물을 좋아하는 어린이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씀바귀의 참맛을 즐길 수 있으니 마치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후에야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씀바귀는 먼 옛날부터 사람들이 식용한 나물이다.《시경》에 실린 기원전 11세기 무렵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노래에서도 씀바귀를 노래하고 있는데, 고대 사람들도 씀바귀의 쓴맛을 썩 즐기지는 않은 모양이다. 노래의 주인공이 젊은 여자라서 아직 씀바귀의 참맛을 몰랐던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시경》〈곡풍(谷風)〉에 “누가 씀바귀를 쓰다고 하였던가? 내게는 달기가 냉이와 같네”라는 노래 구절이 나온다. 쓴 씀바귀가 오히려 냉이처럼 달다는 것인데 반어법으로 표현한 글이다. 남편한테 버림받은 여자가 부른 노래니, 씀바귀의 쓴맛쯤이야 버림받은 아픔에 비하면 오히려 달콤한 맛이라는 비유다. 쫓겨난 조강지처의 슬픔과 아픔이 구구절절이 배어 있다.
「따뜻한 동쪽 바람 불더니 어느새 날 흐리고 비가 내리네/ 애써서 마음 모아 함께하다가 이리도 화를 내니 너무하네요/ 순무를 뽑고 무 뽑을 땐 뿌리만 필요한 것이 아니랍니다」
회한과 원망에 이어 “쫓겨나니 터벅터벅 걷는 걸음은 마음속에 가고 싶지 않아서라오”라고 비통한 심정을 읊은 연후에 나오는 것이 씀바귀의 비유다. 버림받은 이 여인, 크나큰 아픔을 겪은 만큼 인생의 쓴맛도 관조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선 것이 아닐까? 씀바귀 맛도 진짜 달게 느껴졌다면 실연의 아픔쯤은 이겨냈을 것 같다.
씀바귀가 달다고 노래한 인물이 또 있다. 주 태왕(周太王)으로 주나라를 건국한 무왕의 시조이니 기원전 11세기 훨씬 이전의 인물이다. 역시 씀바귀가 달다는 표현을 반어법으로 사용했다. 태왕이 처음 가솔을 이끌고 주나라 땅 들판으로 집을 옮기어 움집을 짓고 살면서 가문을 일으켰으니 기름진 음식은 찾지도 않았고, 밭에서 캔 씀바귀도 그저 엿처럼 달다고 느끼며 검소한 생활을 했다. 씀바귀가 엿처럼 달다는 뜻인 ‘근도여이(菫荼如飴)’라는 사자성어가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근검절약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어쨌든 여기서도 씀바귀는 원래 무지하게 쓴 나물인데 고생을 하면서 검소하게 살다 보니 그 쓴 씀바귀마저 엿처럼 달다고 한 것이다.
뒤집어보면 고대인들에게 씀바귀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나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달콤한 음식도 많은데 쓰디쓴 씀바귀를 사람들이 굳이 좋아했을 것 같지는 않다. 씀바귀를 가리키는 한자에도 옛날 사람들의 이런 인식이 반영돼 있다. 씀바귀는 한자로 도(荼)라고 쓴다. 한자를 풀어보면 풀 초(艹) 자 아래에 나머지 여(余) 자로 이뤄진 글자다. 나물로 캔 여러 풀 중에서 다른 풀을 다 고르고 난 후에 남은 식용이 가능한 풀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먹을 수 있는 나물 중에서 가장 맛이 없다는 뜻이니 씀바귀가 환영받지 못한 이유를 한자 이름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모진 구박을 받았으면서도 기원전 11세기 이전부터 현재까지 무려 3천 년 이상 사람들 식탁에 오른 것은 씀바귀에 특별한 맛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입에 쓴 것이 몸에는 좋다는 옛말은 씀바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전국의 산 능선을 따라서 또는 길가나 숲 가장자리에 조밀하게 생육하며 주로 메마르고 척박한 토양에서 자란다. 높이는 10cm정도이며 땅속줄기가 옆으로 뻗으면서 번식하고 잎이 무더기로 나온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의 원형·넓은 달걀 모양 또는 넓은 타원형이며 양 끝이 둥글고 가장자리는 대부분 밋밋하다. 잎자루는 길이 1∼5cm이다.
꽃은 5∼6월에 피고 황색이며, 1∼3개의 두화(頭花)가 긴 꽃줄기에 달린다. 두상화는 지름 2∼2.5cm이고 총포는 길이 8∼10mm이며 내포편(內苞片)은 9∼10개이다. 열매는 8월에 결실하며 수과(瘦果)로 방추형이고 같은 길이의 부리가 있으며 좁은 날개가 있고 관모는 백색이다.
생약명(生藥銘)은 고거(苦苣), 고채(苦菜), 활혈초(活血草), 황과채(黃瓜菜), 은혈단(隱血丹)이다. 맛은 쓰고, 성질은 차다. 간경화, 건위, 고미, 구내염, 만성기관지염, 발한, 이뇨, 이질, 종창, 진정, 청열양혈, 최면, 해독등에 효능이 있다. 민간에서 전초는 열을 내리고 해독 등의 약초로도 이용한다. 말린 약재 5 g 정도 달여서 복용하고 외용은 짓찧어서 환부에 붙인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이른 봄에 씀바귀를 먹으면 그해 여름은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했고 “춘곤증을 막아주어 봄철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말도 있다. 옛말 그른 것 하나도 없다는 말처럼 모두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씀바귀는 성질이 차면서 맛이 쓰다고 했으니 다시 말해 여름철 더위를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이고,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키며 잠을 덜 자도록 도와준다고 했으니 곧 씀바귀를 먹으면 춘곤증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씀바귀는 고들빼기와 함께 봄철 춘곤증을 예방하는 대표적인 나물로 꼽혀왔다.
씀바귀가 몸에 좋은 과학적인 이유인데, 쌉싸래한 맛은 오히려 식욕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니 미각적으로 씀바귀가 좋은 이유다. 대표적인 봄나물로 3천 년 넘게 맛있게 먹고 있으면서도 비유해서 말할 때는 실연의 아픔보다 달다느니, 고생할 때의 고통에 비하면 엿과도 같은 맛이라느니 입방아를 찧으니 씀바귀 입장에서는 이런 뒷담화가 없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간의 속성이 봄나물 씀바귀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어린 순을 된장국과나물로 먹을 수 있다. (참고자료: 원색한국식물도감(이영노.교학사), 한국의 자원식물(김태정.서울대학교출판부), 네이버·다음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생명과학 사진작가)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