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대비와 삼법화상이 세운 하동 쌍계사 대웅전의 보물들
하동 쌍계사 대웅전(河東 雙磎寺 大雄殿, 보물 제500호)이 있는 쌍계사는 통일신라 성덕왕 21년(722)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和尙)께서 선종(禪宗)의 육조(六祖)이신 혜능((慧能)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귀국,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눈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 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 그 뒤 문성왕 2년(840년)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하신 혜소 진감선사(慧昭 眞鑑禪師, 774~850)께서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여 선(禪)의 가르침과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하였다. 후에 정강왕(재위 886∼887)이 두 개의 계곡이 만나는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쌍계사로 고쳤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절이 불에 탔던 것을 벽암대사가 인조 10년(1632) 다시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의 중심 법당으로 석가모니 불상을 모신 대웅전은 이 때에 다시 지은 건물로 짐작한다.
쌍계사 대웅전(雙磎寺 大雄殿)의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재료들의 형태가 비교적 우아한 곡선과 오래된 양식을 보이고 있다. 가운데 3칸에는 4짝의 여닫이문과 기둥 사이에 공포를 2개씩 놓고 있으며, 양쪽 끝 칸은 2짝씩 문을 달아 공포를 1개씩 놓았다. 건물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안쪽을 가린 우물천장으로 꾸몄고 불단 위로 지붕 모형의 닫집을 화려하게 만들어 놓았다.
전체적으로 기둥이 높아 건물의 규모가 크게 느껴지는데 조선시대 불교 목조 건축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어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대웅전(大雄殿)의 주련(柱聯): 身普遍十方中-불신이 널리 시방세계에 두루하사/ 世如來一切同-삼세의 모든 부처님 한결 같으시니/ 大願雲恒不盡-크고 크신 원력 구름같이 다함없고/ 洋覺海玅難窮-망망한 깨달음의 바다 궁구할 수 없도다./ 大淸淨妙莊嚴-대하고 청정한 묘한 장엄이여/ 衆會圍遶諸如來-집한 사부대중이 부처님을 에워쌌네. (화엄경 게송)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河東 雙磎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四菩薩立像, 보물 제1378호)은 쌍계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삼세불좌상 중 아미타불을 제외한 석가모니불과 약사불, 그리고 일광·월광·관음·세지보살로 추정되는 네 보살입상이다.
중앙에 모셔져 있는 석가모니불은 본존불로서 삼불상 중 가장 크고 건장한 신체에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되어 보인다. 육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동그스럼해진 머리는 이마 위쪽과 머리 꼭대기에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표현되어 있으며, 둥글넓적한 얼굴에는 근엄한 듯 온화한 미소가 엿보인다. 옷은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통견(通肩)형식으로 오른팔이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17세기 전반 경 이후 불상들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옷 입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손 모양은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데, 실제 인물의 손처럼 표현되어 사실성이 돋보여 조성 화원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느끼게 한다.
정면을 향하여 본존불의 오른쪽에 모셔져 있는 약사불은 굽어보는 듯한 자세와 머리 모양, 얼굴 표정, 짧아진 목과 당당한 어깨, 넓은 무릎, 사실성 넘쳐나는 손의 표현, 밋밋한 듯 부피감이 있는 신체 등 본존불과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석가모니불에 비하여 크기가 다소 작아지고 아미타인(阿彌陀印)의 손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얼굴과 귀가 약간 길어지고 변화된 옷 입는 방식과 보다 복잡해진 옷주름 등만이 다를 뿐이다.
사보살입상은 약사불과 아미타불 좌·우에 서 있는 네 구의 보살입상으로 일광·월광보살상과 관음·세지보살상으로 추정된다. 네 구의 상 모두 배를 앞으로 약간 내민 듯한 S자 모양의 늘씬한 체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귀걸이·목걸이·팔찌 등의 장식을 하였다. 약사불의 양 옆에 있는 일광·월광보살상은 보관 중앙에 해와 달 모양이 표현되어 있으며, 왼손을 어깨 위로 들고 오른손을 아래로 하여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한편 아미타불의 양 옆에 있는 관음·세지보살상은 오른손을 어깨 위로 들고 왼손을 아래로 내렸는데, 각각 연꽃가지와 정병을 들고 있다.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천의 자락, 양 손·발 등의 조각 수법이 매우 자연스럽고 사실적이어서 석가모니불 및 약사불상과 함께 작품성이 뛰어나다.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 후불탱으로 중앙의 석가모니불도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약사불도, 오른쪽에는 아미타불도를 배치한 쌍계사 대웅전 삼세불탱(雙磎寺 大雄殿 三世佛幀, 보물 제1364호)은 18세기 후반의 대형불화로서 비교적 정교한 필치와 화려하면서도 은은함을 보여주어 화풍파악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뛰어난 작품이 있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의하면, 조선 인조 17년(1639)에 청헌(淸憲)비구를 비롯한 11명의 화승들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쌍계사 목조삼세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조선시대 17세기 전반 경의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쌍계사 (운수리)
* donga.com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32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