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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성품을 닮은 창덕궁 후원의 애련지와 의두합 일원

들풀/이영일 2016. 11. 29. 07:03

  창덕궁 애련지와 의두합(昌德宮 愛蓮池·倚斗閤) 일원은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에서 북쪽으로 산자락 하나를 감돌아 나가면서 두 번째로 만나는 애련지 일대인데, 여기에는 기오헌, 애련정, 연경당 따위가 자리잡고 있다.

   애련지(愛蓮池)는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창덕궁 후원 불로문(不老門)을 지나 왼쪽에 자리하고 있고, 애련지 북쪽에 서 있는 간결한 정자가 애련정(愛蓮亭)이다. 연꽃을 좋아했던 숙종이 이 정자에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붙여, 연못은 애련지가 되었다. 숙종은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라고 새 정자의 이름을 지은 까닭을 밝혀 놓았다. 부용지와 달리 가운데 섬이 없는 방지(方池)로, 사방을 장대석으로 쌓아올렸다. 입수구가 독특한데, 흘러내리는 도랑물을 물길을 따라 폭포수처럼 떨어지게 만들었다. 1692년(숙종 18)에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섬은 없다. 애련지 서쪽 연경당 사이에 또 하나의 연못이 있는데, 원래는 이 곳에 어수당(魚水堂)이라는 건물도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 인조반정과 어수당: 지금은 사라진 어수당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1623년 인조반정 당시 광해군의 비 유씨는 반정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궁녀들과 함께 밤에 몰래 어수당에 들어가 숨어 있었다. 이틀이 지나도록 밖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한 유씨는 보향이라는 궁녀를 시켜 자신이 여기 있음을 알렸다. 보향이 반군 대장에게 “이 일이 의거라고 하면서 어찌 전왕의 비를 굶겨 죽이려 하오?”라고 하자. 대장이 이를 인조에게 보고하여 유씨에게 음식을 후하게 차려 주었다고 한다.

   애련정(愛蓮亭)은 숙종 18년(1692)에 애련지의 물가에 지은 것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이익공의 사모지붕 양식을 띠고 있다. 일반 건물에 비해 추녀가 길며 추녀 끝에는 잉어 모양의 토수가 있다. 물 기운으로 불 기운을 막는다는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것이다, 건물을 받치는 네 기둥 가운데 두 기둥은 연못 속에 잠겨 있는 초석 위에 세워져 있다. 정자 사방으로 평난간을 둘렀는데, 낙양창 사이로 사계절이 변하는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은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가 쓴 ‘애련설(愛蓮設)’이라는 시에서 유래했다. 숙종이 지은 ‘애련정기(愛蓮亭記)’가 ‘궁궐지(宮闕志)’에 전한다.

   의두합(倚斗閤)은 1827년(순조 27) 효명세자가 애련지 남쪽에 몇 개의 건물을 짓고 담장을 쌓았다. 현재 ‘기오헌(奇傲軒)’이라는 현판이 붙은 의두합은 8칸의 단출한 서재로, 단청도 없는 매우 소박한 건물이다. 바로 옆의 운경거(韻磬居)로 추정되는 건물은 궐 안에서 가장 작은 한 칸 반짜리 건물이다.

  

  창덕궁 불로문(昌德宮 不老門)은 왕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세워진 문으로 창덕궁 연경당(演慶堂)으로 들어가는 길에 세워진 돌문이다. 문은 하나의 판석을 ㄷ자 모양으로 깎은 뒤 다듬은 것이다. 문의 윗부분에 전서체로 불로문이라 새겨져 있다. 마치 종이로 오려낸 듯한 단순한 형태이지만 두께가 일정하게 돌을 다듬은 기술이 세밀하다. 불로문과 잇달려 있는 담장과의 조화로움에서도 전통 조형물의 우수함을 엿볼 수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두산백과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창덕궁 (와룡동)


* donga.com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34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