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역사가 담겨 있는 침전, 창덕궁 대조전 일원
창덕궁 대조전(昌德宮 大造殿, 보물 제816호)은 왕비가 거처하는 정당(正堂)이다. 궁궐의 내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중궁전(中宮殿)이라고도 불린다. ‘대조(大造)’는 ‘큰 공업(功業)을 이룬다’는 뜻이다. ‘지혜롭고 현명한 왕자의 생산을 의미한다’고 풀이하기도 하는데 이 곳에서 왕비가 거주했기 때문이다. 대조전은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無樑閣) 지붕을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무량각을 구성한 이유는 대조전의 집채가 대지를 상징하는 곤전(坤殿)인 까닭에 하늘 높이 용마루가 솟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건물에서 조선 제9대 왕인 성종(1494년)을 비롯하여 인조(1649년), 효종(1659년), 철종(1863년), 그리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1926년)이 승하하였고, 순조의 세자로 뒤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이 태어나기도 하였다.
대조전은 조선 1405(태종 5)년에 처음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를 비롯하여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불이 나서 다시 지어야 했다. 지금의 건물은 1917년에 또 화재를 당하여 불에 탄 것을 1920년에 경복궁에 있던 교태전을 헐어 이 곳에 옮겨지은 것이다. 경복궁에서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을 헐어다 희정당(熙政堂)을 지을 때 왕비의 침전이던 교태전(交泰殿)도 함께 옮겨다 대조전을 지었는데,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창덕궁에 적합하도록 그 구조는 새롭게 하였기에 건물 자체는 물론 주변의 부속 건물들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 헌종 연간에 발간된『궁궐지』에 의하면 당시 대조전 현판 글씨는 순조의 어필이었다고 한다. 대조전은 현재 36칸으로 앞면 9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건물 가운데 3칸은 거실로 삼았으며, 거실의 동·서쪽으로 왕과 왕비의 침실을 두었다. 각 침실의 옆면과 뒷면에는 작은 방을 두어 시중드는 사람들의 처소로 삼았다. 건물 안쪽에는 서양식 쪽마루와 유리창, 가구 등을 구비하여 현대적인 실내 장식을 보이고 있다.
∙ 흥복헌(興福軒)은 대조전 동쪽에 붙어 있는 익각(翼閣)이다. 주로 임금이 친왕(親王)과 조정 대신들을 접견하던 장소로 쓰였다. 한일합방(韓日合邦)이라는 경술국치(庚戌國恥)를 가져온 어전회의가 열렸던 비극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흥복(興福)’은 ‘복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 선평문(宣平門)은 대조전의 남쪽에 있는 정문이다. 희정당(熙政堂)과 통한다. 높은 계단 위에 세워져 있는데 이는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을 함부로 볼 수 없게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선평(宣平)’은 ‘화평(和平)을 세상에 펼친다’는 뜻이다.
∙ 요휘문(耀暉門)은 대조전 서쪽에 있는 문인데 남쪽을 향하고 있다. ‘요휘(耀暉)’는 ‘밝게 빛난다’는 뜻이다. ‘耀(요)’는 ‘曜(요)’와 통용자이고 ‘暉(휘)’는‘輝(휘)’와 통용자여서 여러 문헌에 서로 뒤섞여 나온다.『순종실록(純宗實錄)』에서는 ‘曜暉門(요휘문)’이라고 하였다.
∙ 경극문(慶極門)은 대조전에서 서쪽으로 오가는 문이다. ‘경극(慶極)’은 ‘경사스러움이 지극하다’는 뜻이다.
∙ 경훈각(景薰閣)은 대조전 뒷마당의 서쪽에 있는 건물이다. 동쪽에는 집상전(集祥殿)이 있고 서쪽에는 경훈각이 있었는데 집상전은 화재로 소실된 후 복구되지 않아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경훈각은 원래 2층 건물로, 아래층을 경훈각이라 하고 위층은 징광루(澄光樓)라고 하였다. 1461(세조 7)년에 창덕궁 각 방의 이름을 붙일 때 누상을 징광루, 누하를 광세전(光世殿), 광연전(廣延殿)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경훈각은 광세전과 광연전이 후에 변한 것으로 여겨진다. ‘경훈(景薰)’은 일반 시문(詩文)에서 ‘춘화경명(春和景明)’처럼 주로‘경광(景光), 즉 경치가 훈훈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위층의 누각 이름이 ‘징광(澄光: 맑은 풍광)’이었음을 상기하면 그런 뜻으로 보아도 될 듯하다. 그러나 이 건물의 용도를 고려해 본다면 ‘경(景)’은 ‘우러르다(仰也)’, ‘사모하다(慕也)’라는 뜻을 취하고 ‘훈(薰)’은 ‘훈도(薰陶)’8)의 뜻으로 보아 ‘훈도를 우러러 사모하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숙종의「경훈각시」에는 두 가지 뜻이 다 담겨 있다. ‘薰(훈)’은 ‘熏(훈)’의 통용자로 쓰인 듯하다. 왕조실록에 ‘景熏閣(경훈각)’이라고 한 용례가 보인다.
∙ 청향각(淸香閣)은 대조전 동쪽 뒤편에 있는 건물이다.『동궐도』에도 보이지 않고 남은 기록이 전혀 없다. 1917년 11월 대조전이 화재로 타버리자,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다 복구하였는데, 이때 딸려 온 것으로 추정된다. 자세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집상전이 1667(현종 8)년에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1618~1674년)를 위하여 경덕궁(慶德宮)의 집희전(集禧殿)을 헐어다 만든 것이고, 대조전 일대가 모두 왕후나 대비를 모시는 건물임을 고려한다면, 청향각은 집상전 혹은 대조전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보관하던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향(淸香)’은 ‘맑은 향기’또는 ‘맑고 향기롭다’는 의미이다. 오례통고(五禮通考)의「길례(吉禮)·배위작헌주보령지곡(配位酌獻奏保寧之曲)」조에 “술이 맑고 이에 향기로우며[酒淸斯香], 희생이 깨끗하고 이에 크도다.”라 하여 제수로 쓰이는 술의 맑고 향기로움을 표현하는 데 쓰였다. 또『오례통고』의「가례(嘉禮)·향음주례(鄕飮酒禮)」편에 “저 남쪽 언덕을 바라보니 철에 맞는 물건이 아름답도다. 샘물은 맑고 난초는 향기로우니[有泉淸?, 有蘭馨香], 아침에 마시려 길어오고 저녁 반찬에 맛보도다. 어머니의 얼굴이 기뻐하지 않아 내 마음이 허둥대도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아름다운 계절에 아침저녁으로 어머니를 봉양하나 기뻐하지 않으시니, 내 마음이 초조하다는 내용이다. 이를 종합하면 대조전과 집상전 일대가 여성의 공간이므로 어버이를 봉양하는 데 쓰이는 물품을 관리하는 곳이라는 장소의 의미와 통한다.
∙ 여춘문(麗春門)은 대조전과 희정당 동쪽 중간쯤에 남향으로 난 문이다. 본래 여춘문은『동궐도』에 집상전의 동문으로 그려져 있으나,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다 지으며 집상전 자리로 물려 짓는 바람에 현재는 대조전에 속한다. 1772(영조 48)년 1월에 영조가 이 곳에서 승지에게 명하여 토지와 곡식의 신인 사직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제(社稷祭) 제관(祭官)의 거안(擧案) 10)을 읽게 한 일이 있다. ‘여춘(麗春)’은 ‘아름다운 봄’이라는 의미이다. 태양을 맞이하는 동쪽의 문[東門]으로서 그 의미가 잘 통한다. 경희궁 숭정전(崇政殿)의 동문 이름도 여춘문 이었다.『동궐도』에는 집상전 동쪽에 동서 방향으로 난 문으로 그려져 있어, 남향으로 난 현재의 문과는 방향이 전혀 다르다.
∙ 가정당(嘉靖堂)은 대조전 후원 담장 너머 넓은 공터에 있는 정자이다. 대조전 후원 중간쯤의 경사진 계단 끝의 천장문(天章門)을 나서면 북쪽의 넓은 뜰에 외따로 서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가정(嘉靖)’이란 ‘아름답고 편안하다’는 뜻이다.『동궐도』에 보이지 않으므로 19세기 후반, 혹은 일제시대에 덕수궁의 가정당을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창덕궁 대조전 백학도(昌德宮 大造殿 白鶴圖, 등록문화재 제243호)는 왕실(王室)이 후원한 미술교육기관인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에서 교육받은 대표적 신진 화가인 김은호(金殷鎬, 1892~1979년)에 의해 1920년경 제작되어 대조전(大造殿)에 부착된 벽화(壁畵)이다.
백학도(白鶴圖)는 채색 화조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형상의 표현과 기술묘사에 충실하여 화려한 구성을 담고 있다. 197cm×579cm 크기의 화조도(花鳥圖)로, 동쪽 벽면의《봉황도(鳳凰圖)》가 낮의 경치인 것에 비해 밤의 경치를 이루며 두 벽화의 해와 달이 왕비가 앉는 의자 양옆으로 나타나도록 배치되어 있다. 궁전 장식화로《백학도》의 주제는 배경의 노송들과 더불어 송령학수(松令鶴壽)로 표현되는 장생불사의 염원을 상징한다.
궁중 벽화로는 다른 5점과 더불어 유일하게 현존하고 있으며, 단순한 장식이 아닌 전각(殿閣)의 기능과 연계되어 추락한 왕실의 안녕 및 권위의 회복, 왕실의 역량을 재확인하는 길상적(吉祥的), 상징적(象徵的) 의미를 갖고 있어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창덕궁 (와룡동)
* donga.com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15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