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가산 보문사의 창건설화가 있는 보문사 석실(普門寺 石室) 보문사 석실(普門寺 石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7호)은 대한불교조계종 직영사찰로서, 우리 나라 3대 관음영지(觀音靈地) 중의 한 곳이다. 이 절의 창건의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있는 석굴사원이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 안에 불.. 카테고리 없음 2016.12.03
보문사 향나무(普門寺 香木.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7호) 보문사 향나무(普門寺 香木.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7호)는 보문사 석실(石室) 앞 큰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다. 나무의 나이는 7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0m, 둘레는 3.2m 정도이다. 높이 1.7m에서 두 줄기로 갈라지는데 동쪽 줄기의 둘레는 1.3m, 서쪽 줄기의 둘레는 1.5m이다. 나무의 형태는 .. 카테고리 없음 2016.12.03
보문사 맷돌(인천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 보문사 맷돌(인천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은 보문사 삼성각으로 오르는 계단 옆 화단에 있는 맷돌이다. 맷돌은 곡물을 가는데 쓰이는 용구로 위·아래 두 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문사 맷돌은 지름 69㎝, 두께 20㎝의 화감암으로 되어있으며, 부드러운 곡선으로 잘 다듬어 놓았다. 현존하.. 카테고리 없음 2016.12.03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암벽에 조각한 보문사 마애석불좌상(普門寺 磨崖石佛坐像) 보문사 마애석불좌상(普門寺 磨崖石佛坐像,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은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주지인 이화응(李華應)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1928년 낙가산 중턱 일명 눈썹바위 암벽에 조각한 석불좌상으로, 높이 9.2m, 폭 3.3m이다. 마애관음좌상(磨崖觀音坐像)은 머리에는 커다.. 카테고리 없음 2016.12.03
다양한 각도에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창덕궁 옥류천 일원 창덕궁 옥류천(昌德宮 玉流川) 일원은 창덕궁 후원 존덕정 일원의 고개 넘어서 북쪽의 깊은 골짜기에 있으며 인조 14년(1636)에 조성하였다. 북악산 동쪽 줄기에서 흐르는 물과 인조가 팠다고 알려진 어정(御井)으로부터 계류가 흐른다. 소요암(逍遙巖)이라는 널찍한 바위에 U자형 홈을 파.. 카테고리 없음 2016.12.03
쌍룡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창덕궁 존덕정(昌德宮 尊德亭) 일원 창덕궁 존덕정(昌德宮 尊德亭) 일원은 애련지를 지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존덕지(尊德池) 주변에 4개의 정자와 2개의 연못만 남아있다. 창덕궁 후원 가운데 가장 늦게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모습은 네모나거나 둥근 3개의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1900년대 이후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 카테고리 없음 2016.12.02
사대부 살림집을 본뜬 조선 후기 접견실, 창덕궁 연경당(昌德宮 演慶堂) 창덕궁 연경당(昌德宮 演慶堂, 보물 제1770호)은 주합루와 영화당 구역을 감싸고 있는 작은 능선을 지나면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 환경은 아름다운 숲과 연못 및 정자 등이 어우러져 이상적인 경관을 이루고 있다. 우측의 솟을 대문인 장양문(長陽門)은 사랑채로 통하고, 이 문을 .. 카테고리 없음 2016.11.30
군자의 성품을 닮은 창덕궁 후원의 애련지와 의두합 일원 창덕궁 애련지와 의두합(昌德宮 愛蓮池·倚斗閤) 일원은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에서 북쪽으로 산자락 하나를 감돌아 나가면서 두 번째로 만나는 애련지 일대인데, 여기에는 기오헌, 애련정, 연경당 따위가 자리잡고 있다. 애련지(愛蓮池)는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창덕궁 후.. 카테고리 없음 2016.11.29
창경궁(昌慶宮) 후궁들의 처소 영춘헌과 집복헌(迎春軒∙集福軒) 창경궁(昌慶宮. 사적 제123호)의 영춘헌(迎春軒)과 집복헌(集福軒)은 양화당 동쪽에 자리하여 주로 후궁들이 거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춘헌(迎春軒)은 남향인 내전 건물이며, 집복헌(集福軒)은 영춘헌 서쪽 방향에 5칸으로 연결된 서행각이다. 이 건물들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려지.. 카테고리 없음 2016.11.28
임금과 신하의 학문적 교류가 이뤄진 창경궁 숭문당과 함인정 창경궁 숭문당(昌慶宮 崇文堂)은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창경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고 광해군 때 창경궁을 재건하면서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1830년(순조 30) 소실된 것이 그해 가을에 재건되었다. 경사진 터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뒤에는 낮은 주초석.. 카테고리 없음 2016.11.28